오늘은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다들 인앤아웃버거 먹고 새벽에 들어왔고 J는 새벽 2시에 미팅이 있다고 해서 2시 이후에 들어왔다고 한다. 정확히 언제 들어온지는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잘 자다가 새벽에 한번 깼는데 클래식 음악이 크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8시에 한번 더 깼다. 갑자기 바퀴벌레약을 뿌리러 왔다고 하면서 아파트 관리자가 바퀴벌레약을 뿌리고 갔다. J씻으려고 욕실에 갔는데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서 욕실이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저번에 바퀴벌레 사건으로 방충망이 벌어져 있어서 환기할 때마다 그 앞에서 바퀴벌레가 들어오는지 아닌지 감시하고 있어야 하지. 아무리 친구 집이라지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그렇고 이대로 지내기도 짜증 나는 수준까지 왔더랬다. 그 짜증 나는 기분을 모두 조금씩 가지고 있지만, 누구 하나 먼저 터트리지 않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너구리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은 맛있었다...




 

 



오늘은 게티 센터 (Getty Center)를 가기 위해 오전 12시에 집에서 나왔다. 720번 Rapid Metro 버스를 탔다. 

빨간색 버스는 처음 타본다! 이 버스는 버스 길이가 지하철 한 칸만 하다. 길이가 길어서 중간에 지하철처럼 주름이 져있는 장치가 되어있다. 아빠에게 보여줬더니 무슨 버스라고 하긴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버스를 타고 50분 정도 달려 UCLA 앞에 내렸다. 윌셔/웨스트우드 거리는 정말로 번화가 같았다. 대학생들도 많고, 사람들도 엄청 많고, 직장인도 많은듯하고, 패셔너블한 인간들도 있는 반면에 골때리는 노숙자들도 가득했다. 특히 버스에서 내릴 때 머리만 쏙 내밀고 몸통 부분은 국방색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앉아서 실실 웃고 있는 젊은 노숙자와 눈이 마주쳤다. 흐 섬뜩했다.



















그 앞에서 다시 761 Rapid Metro를 탔다. 꼬불꼬불 올라가길 20분 정도. 게티 센터 (Getty Center) 버스 정류장에 우리 말고 두 세 명이 더 내렸다. 오전 12시에 나왔는데 도착하니 2시가 다 되어갔다. 발걸음을 옮겨 게티센터까지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무료 Tram을 타러 갔다. 앞에 안내요원도 있고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디서 타는지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발견하기 쉽다. 그걸 타고 5분 정도 올라가니 눈부시게 멋진 게티 센터 (Getty Center)가 나타났다. 도착하니 해가 쨍쨍하고 바람도 선선하고 구름도 적당히 있는 관광하기 좋은 날씨였다.



게티 센터 (Getty Center)는 미국의 석유 재벌 J. 폴 게티(J. Paul Getty)의 개인 소장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으로, 1997년에 지어졌으며 1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사비가 투입됐다. 세계적인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중간에 쉬어갈 수 있도록 정원이 마련돼 있다. 이 모든 시설이 무료라는 점.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여 날씨가 맑은 날에는 LA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내리자마자 맵을 보고 있으니 안내요원 할머니가 건물로 들어가면 Map이 있으니 그걸 보고 가거나 APP을 다운받으면 된다고 했다. 우선 센터로 들어가서 맵을 받았다. 펼쳐보고 있으니 머리가 컴컴하다. 지금 들어와 있는 건물의 작품들을 구경하기로 했다. 1400년대였나, 1500년대였나 그즈음의 Saint 관련 작품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옛날 성경들도 그림들도 조각들도 장식품에 식기들 유리그릇 액자 초상화 옷가지 가구 등등. 특히 예쁜 그릇이 있었는데 Footed Bowl 이라고 쓰여있는게 다반사였다. 내가 생각하는 그...발 닦을때 쓰는 그릇들인가?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데 발 닦을때 쓰는 그릇들이라고 적혀있었다. 


박물관 내부는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는 한에서 촬영할 수 있다. 그런데 뭐, 작품이 너무 많아 못 찍을 정도였다. 

마음에 드는 작품들만 몇 개 담아뒀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좋아서 사진을 막 찍어도 작품(?)이 되었다.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고 맘껏 뛰어노는 아이들도 많았다.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사람 구경하기에도 딱 좋은 날씨였다. 오늘 아침 우울했던 기분이 싹 풀렸다. 곳곳에 분수도 많고 앉을 곳도 많고 풀도 많아서 사람이 쉴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침 일찍 와서 저녁 늦게까지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곳임에는 분명할 듯!
















돌아다니다가 출출해서 오후 3시까지 한다는 카페테리아에 내려갔는데 닫혀있었다. 겨우 2시 30분이었는데 휴. 그래서 결국 간단한 커피를 파는 곳에서 나는 카페라테를 B는 핫초코와 브라우니를 주문해서 그 앞 테라스에서 배를 채웠다. 그 자리에서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어디를 갈까? 하고 맵을 펴서 이야기를 나눴다. 끝내주는 전경은 봐야 하고, 아래쪽 잔디밭과 미로 모양의 정원도 보기로 했다.






















전망을 보러 올라갔다. 끝내주는 전망이었다. 다들 기념사진을 찍고, 그 앞에서 연인과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했다. LA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숲 속에 집들이 파묻혀있는 것 같았다. 가득 심어져 있는 독특한 모양의 선인장들도 좋았다. 우리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니 어떤 노부부가 우리 둘을 같이 찍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계속 브이만 하니깐 남편분이 엄지손가락을 내밀어서 이렇게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이 3장이나 생겼다. 


게티센터에는 다양한 전망이 많고,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환상적인 풍경들이 더해졌다. 흥분하지 말고 저 꼭대기 가서 사진을 찍자! 

이러면서 심호흡을 하며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 탁 트인 광경에 몇 번이고 좋다-를 연발했다. 
















사진을 계속 담다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가는 길에는 다른 박물관 전시를 보며 내려왔다. 그리고 오후 4시 즈음 빠른 걸음으로 메인 가든을 구경했다. 미로 모양으로 된 정원과 호수가 같이 있고 그 주변을 둥그렇게 벤치들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 뒤에는 또 잔디가 있었다. 그곳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유로워 보였다. 어떻게 우리 집 안방처럼 엎드려 있을 수가 있을까. 크크크, 잔디밭에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걸 보니 막 들어가도 되나 보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정원 구경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 스산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구 꼬여있는 벌레들을 피해 호수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올라갔다. 한 노부부는 정원을 함께 거닐며 할아버지가 할머니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필름 카메라였는데 한장한장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서 사진을 찍어주는게 눈에 보였다. 사랑이 가득 담긴 사진이겠지? 흐흐, 그래서 저 노부부 사진찍을 때 방해 안하려고 한 10명이 뒤에서 지나가려고 줄 서서 기다렸었다는. 나도 그중에 한명. 

예쁘게 지는 노을을 이용해서 딸이나 가족의 사진을 매우 정성스럽게 (그러니깐 완벽한 구도와 빛의 활용...등등) 찍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출사지에 온 것 같았다. 

















돌아갈 길이 걱정되어 우리는 이 정도로 게티 센터 구경을 마무리 했다.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트램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내려가는 트램을 탔다. 바깥구경을 하며 오늘 하루도 진짜 관광객처럼 보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가 질 때쯤의 게티 센터는 주황색으로 물들어서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려가는 길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깥구경을 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돌아가는 버스에는 사람도 많고, 밀리기도 무지하게 밀렸다. 저녁 6시 조금 안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버스 탈 때만 해도 밝았는데 집에 도착하니 새까만 밤이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짐 정리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바로 밥을 하고 반찬을 했다. B는 채소와 햄을 썰어 찬밥과 함께 볶음밥을, 나는 김치를 썰어서 김치찌개를 했다. 다 먹고 환기를 시키고 대충 집 정리를 했다. 욕실에 수건이 하나도 없어서 오늘은 수건 빨래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빨랫감들을 옮기려는 찰나에 J의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왔고 집 매니저와 한바탕 언성을 높이더니 화가 나서 운동하러 간다고 나가버렸다. 나와 B는 빨래를 돌렸다. 쿼터가 부족해서 수건이라도 빨기로 했다. 




욕실 바닥 카펫과 거실 카펫을 따로 넣고 수건을 따로 넣어서 세탁기 2개를 돌리고 방금 건조기도 두 개를 돌리고 들어왔다. 여기 온 지 8일째. 왠지 시간이 갑자기 빨리 가버리는 것 같아서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입던 옷들이 아직도 잘 맞는 걸 보니 살은 찌지 않았나 보다. 조금 이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날. 일기를 다 쓰고 건조기 돌려놓은 빨래들 걷어와서 잘 접어놓고 내일 산타모니카 가서 살 아이템들을 정리해야겠다.




Getty Center Coffee 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