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전 7시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에 짐을 다 풀어놓고 캐리어 정리를 했다. 마지막까지 같은 방을 쓰는 사람과는 "불 꺼도 되나요?" "네? 네" 이만큼의 대화가 전부였다. 오히려 그런 단절됨과 무관심함이 혼자 여행한다는 기분을 들게 해준 것 같다. 옆방에 계신 분과 인사를 짧게 나누고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나왔다. 


숙소는 명성대로 편하게 깨끗하게 잘 머물 수 있었지만 같이 지내는 사람들의 개념 없는 행동들이 짜증 났다. 새벽 4시에 세탁기를 돌리거나 새벽 1시에 드라이기를 쓰거나 방에서 크게 음악을 틀어놓는다던가 하는 무개념한 것들. 조금만 배려하면 되는데 다들 왜 그러는 걸까, 그러고 싶으면 돈 더 내고 1인 1실을 가거라.



 


햐, 이제 좀 뉴욕 날씨 같네. 영하 2도를 찍은 뉴욕의 아침! 한인 짐 보관소가 있다길래 그 건물로 올라갔더니 기존에 알고 있던 위치가 아니어서 짐 보관소에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같은 건물 다른 층이어서 다시 올라갔더니 문이 잠겨있더라. 막 두드렸더니 안에서 주무시던 분이 나와서...으하. 분명히 이용시간은 오전 9시부터인데 나는 10시가 넘은 시간에 갔는데도 짐을 못 맡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아, 짐 보관은 7$. "수고하세요." 라고 했더니 "네 안녕히 가세용" 하시던 게 생각나네. 용용!

















12월 8일, 오늘은 존 레논의 기일로 센트럴 파크 안에 있는 스트로베리 필즈 (Strawberry Fields)에 1년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내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우연히 그 기간이 겹치게 되어서 많이 기대했다. 스트로베리 필즈 앞엔 벌써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IMAGINE 주변엔 사진, 초, 꽃, 메시지, 신문 등등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직접 가지고 온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 했다. 옆에 있는 벤치에서는 한 남자가 통기타를 치며 존 레논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갈 길이 바빴지만, 그곳에서 꽤 오래 머물러있었다. 












 




센트럴파크를 한 바퀴 돌았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은가? 싶었는데 센트럴파크를 달리는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과 차가운 아침 공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그렇게 걷다가 내려가서 치폴레에서 밥을 먹었다. 어제 라자냐 먹다가 입천장 까졌는데 사워크림 넣은 보울을 먹으니깐 미치는 줄 알았다. 그래도 여유 있게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 이날 도톰한 반팔에 후리스를 입고 코트를 입었는데 치폴레 안에서 밥 먹다가 후리스 안에 붙이는 핫팩을 두 개 붙였다. 으 추워



















 

 




다음엔 제!발! 제대로 소호를 보고 싶어서 또 소호엘 갔다. 나는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예쁜 건물과 봐뒀던 샵과 길거리 풍경을 찍었다. 길을 걷다가 에이솝이 보이길래 그곳에서 핸드밤을 샀다. 거기 흑인 캐셔 언니랑 샘플 발라가며 뭐가 더 나은지 향 맡아보고 더 좋은 걸로 샀다. 그 옆엔 몰스킨 매장이 있었다. 캬 신기했다. 라코스테도 들렀고 컨버스 매장도 들렀다. 무인양품은 민망해서 더는 못 가봄. A.P.C.는 포스가 강렬해서 흑흑









하, 역시 이 많은 패션피플들 어떡하지? 너무 멋있었다. 여자든 남자든 할머니든 할아버지든 가리지 않고 패션감각에 가지고 다니는 아이템에 걸으면서 먹는 모습까지 뉴요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말이라 관광객...이 더 많았다는 사실. 그래서 내가 소호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패션피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소호의 대부분의 샵이 몰려있는 큰 거리 말고 구석 쪽으로 들어오면 패션피플들 넘쳐난다.




















독특한 건물들! 여기선 기본 100년 이상 된 건물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볼 수 없는, 뉴욕다운 건물들이 많다. 자로 잰 듯 딱딱 제자리에 위치한 창문과 계단들. 옛날 느낌 그대로 풍겨오는 빛바랜 색깔들. 사진들이 다들 어두워도 보정을 하나도 안 한 이유가 그 느낌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서다. 실제로 정말 저렇게 어두침침하다. 



















그리고 찍다가 지쳐버린 재미있는 낙서들. 덕지덕지 붙어있는 스티커들 다 떼어서 내 캐리어에 붙이고 싶었어!!!

나중에 뉴욕 가면 소호만 온종일 다니도록 계획하고 싶다. 건물들 구경하고 낙서들 구경하고 패션피플 구경하기! 딱 2시간씩 6시간 코스로!













그렇게 2시간 걷다가 Spring St에서 다시 42 St 돌아왔다. 몸 좀 녹이려고 스타벅스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사람 없는 구석진 곳에 있는 스타벅스들 모두 사람이 엄청 많았다. 콘센트 꼽고 핸드폰 충전하면서 커피를 마시며 몸을 녹이려는...생각은 주말의 뉴욕, 특히나 미드타운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근처 샵이나 알짱대며 돌아다니는데 아직 시간은 오후 3시 30분. 딱 1시간만 보고 올 수 있는 곳 없을까!? 생각하다가 향한 곳이 브루클린의 덤보!


















저번에 해가 진 상태에서 덤보를 보러 갔는데 정말 하나도 안보여서 카메라가 초점을 잡지 못할 정도였지. 지금 해 지기 직전이니깐 빨리 넘어가면 볼 수 있겠지! 싶어서 지하철을 타고 High St.에서 내렸다. 한번 왔던 길이라 익숙하게 내려갔더니 캬, 덤보가 잘 보인다. 


사진을 찍고 덤보에서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되게 생뚱맞게 평지에 회전목마가 있길래(;) 그 앞에서 사진을 좀 찍고 멀리 가지 않고 브루클린을 바라봤다. 눈이 조금씩 오고 있었고 시간도 4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공항으로 향하는 익스프레스 버스 타러 가야 할 시간.










지하철을 타고 미드타운으로 올라가니 눈이 내린다! 난 올겨울 첫눈을 뉴욕에서 본 셈! 진짜 펑펑 내린다! 

그래서 우산을 쓰고 건너편에 짐 보관소로 향했다. 아니, 갔는데 다시 문이 잠겨있어서 전화했더니 아예 담당자가 방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삑삑거리며 번호를 누르고 있는데 안에서 또 주무시던 분이 나오셔서 내 짐을 챙겨주셨다. 이번에도 "안녕히 계세요!" 했더니 "안녕히 가세용"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캐리어, 어깨에는 가방. 눈 오는 뉴욕을 느끼지도 못한 채 공항 가는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러 42st Port Authority역 앞으로 갔다. 초록색 옷 입은 사람에게 JFK 간다고 했더니 16불! 이라면서 편도 티켓을 끊어주었다. 표 받고 버스 앞으로 갔더니 운전기사가 어떤 터미널로 가느냐고 물어봤다. 버진아메리카, 4번 터미널이라고 했더니 OK! 했더니 내 짐을 들어서 넣어준다. 버스에 타서 추워진 몸을 녹이며 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5시 30분. 저녁 8시 비행기. 눈은 엄청 많이 오고, 도로는 막히고, 왠지 비행기는 100% 지연될 것 같고. 초조하지만 또 때론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공항에서 또 어떤 다이나믹한 일들이 펼쳐질지! 비행기를 놓치면 어찌 될까, 연착되면 나는 어디서 뭘 해야 할까, TV에서만 보던 공항에서 먹고 자고 씻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될까, 등등등. 하지만 버스는 일찍 도착했다. 내릴 때 버스 기사에게 2$의 팁을 줬다. 눈 오는데 정말 고생했겠다 싶어서!







 





공항 안으로 들어가서 버진아메리카 창구로 갔다. 셀프 체크인 하려고 했는데 카드 결제가 안 돼서 카운터에서 짐 맡기고 그곳에서 체크인 하고 보딩패스를 받았다. 8시 출발 비행기여야 하는데 출발시각이 9시 25분으로 되어있었다. 역시 날씨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어있었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줄이 길게 있었고 비행기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한 사람들이 양해를 구하고 먼저 출국장을 이용하는 바람에 계속해서 늦어졌다. 겉옷을 다 벗고 신발까지 벗고 검사를 받은 다음 게이트로 향했다. 



버진아메리카 게이트 앞엔 사람들이 모두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샌프란으로 가는 비행기랑 엘에이로 가는 비행기 모두 연착되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트북을 하거나 과자를 먹거나 자고 있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으로 일기를 썼다. 휴 정상적으로 비행기를 타도 헤맬 것 같은데 연착까지 된다고 하니깐 긴장을 바짝 하고 안내방송을 들었다. 



9시 넘어서 탑승이 시작되었다. 비행기 내부 청소를 하고 A그룹부터 차례대로 탑승하라는 방송을 했다. 나는 C였고 방송이 나오기 전에 옆 슈퍼에서 과자 2개와 물 하나를 샀다. C 그룹 탑승 시작! 창가 자리로 예약해놓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구석에 쭈그려서 편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비행기 외부 청소도 하고 점검도 하고 다른 그룹들도 다 탑승하고 나니 오후 10시가 넘어서 비행기가 이륙했다.






 



복도 쪽에 있는 어린 남자아이의 부모가 Homework!라고 하더니만 그 남자애는 비행기 안에서 불을 환하게 켜고 내내 숙제하더라. 내 옆에 앉은 한 남자는 갑자기 나를 깨워서 자기가 안경을 내 쪽으로 떨어트렸는데 찾아달라고 했다. 내가 아이폰 불빛을 켜서 아래를 보니 바로 옆에 있었다! 


나도 안경 떨어트리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 잘 알고 있어서 열심히 찾아줬다. 그 외국인이 인제야 잘 보인다며 너무너무 고맙다고. 크크 그렇게 뉴욕 시간으로는 밤 10시에 출발. LA 시간으로는 새벽 2시에 도착했다. 





한인 짐 보관소 7$

chipotle 10.50$

Aesop 29.40$

Express Bus (To JFK) 16$

공항에서 과자2개, 물1개 약 10$


총 7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