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조그맣게 살거야

진민영


p.5 미니멀리즘은 말한다. 지저분한 환경은 지저분한 삶을 만들고, 관리 안 된 물건은 관리 안 된 사람을 만든다고. 그렇다. 나는 내 삶조차 통제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많은 물건을 가졌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게 대해지 못한 나는 부유하지 않았다.

p. 20 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명분으로 속도를 강조하기 시작하면, 매순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감상의 깊이가 떨어진다. 

p. 44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늘 세제 냄새가 폴폴 나면서 옷깃이 빳빳하게 다림질 되어 있다면, 도리어 깔끔한 인상을 만든다. 중요한 건 가진 옷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지, 얼마나 다양한 옷을 입느냐가 아니다.

p.45 결국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건 그 사람의 말투, 청결, 몸가짐, 표정 등이다. (중략) 사람들은 멋진 사람을 좋아하지, 멋진 옷을 입은 추레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p.55 필요한 물건은 이미 다 갖추고 있다. 살면서 불편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그건 단지 게을러서일 때가 많다.

p.60 불편함이 평온함과 자유로 다가오면, 그 불편함을 지속하고 결핍을 즐긴다. 불편함이 스트레스와 피로감으로 이어지면, 그땐 물건을 산다. 

p.74 미니멀 라이프는 내게 물리적 소유물을 덜어내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미니멀 라이프는 삶의 전반에 걸친 단순화 작업이다. 정보와 생각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물건이 아무리 적어도 사소한 일로 늘 전전긍긍하고, 적어놓은 메모나 지식에 집착한다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그 어떤 것과도 시원하게 돌아설 수 있는 호기로움이 미니멀리스트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p.91 추억은 현재를 발목 잡기에 좋은 재료다. 나도 한때 추억에 집착했다. 그럴수록 현실을 소홀히했다. 옛 생각에 젖으며 추억이 나를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아름다움이나 설렘이 아닌, 단지 미련 때문에 붙들고 싶었던 것이다. 과거의 끈은 현재와 나 사이를 훼방놓는다. 잘 꺼내 보지도 않았다. 추억은 절대 현재를 넘어설 수 없다. 현재가 항상 월등하게 이겨야 한다.

p.98 안 입는 옷을 편한 실내복으로 강등시키는 행동은 최악의 옷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입지 않는 옷을 집에서 입는다는 명분으로 옷장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그렇게 실내용으로 잔락한 버리지 못한 옷들은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열이면 열, 옷장에 그대로 방치된다. 

- 안 입는 실내복(=안 입어서 실내에서 입으려고 쟁여둔 옷들) 죄다 가져다 버렸다. 개운해 죽겠다.

p.124 자신의 범주를 인지하지 못한 채 무작정 많이 소유하려고만 하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게 관리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충분히 관리, 통제할 수 있는 만큼 소유해야 한다.

p.126 미니멀리스트가 되면 생활이 매일같이 활력으로 넘친다. 모든 일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것, 스트레스 없이 옷을 고르고 입는 시간, 느리지만 우직하게 목표를 달성하는 근성까지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소유의 무게가 나의 통제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서다. 

p.136 본능을 좇아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표현하다보면, 상대방의 마음도 보이지 않고, 어느새 내 마음조차도 헤아릴 수 없게 된다. 서운하고 상처받고 화나고 슬픈 날이 많아지면서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기대감이 날로 커진다. 그리고 매번 실망한다. 

p.156 미니멀리즘이 내 마음에 심어준 희망의 싹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내 자신을 너무도 또렷하게 알게 됐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슨 취향을 가졌으며, 가치관과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인지, 나를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p.163 옷장의 크기는 항상 소박하게 유지하려고 한다. 옷이 많아지면 그만큼 고민해야 할 선택지도 늘어난다. 옷이 적으면 고민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가뿐한 아침을 보낼 수 있다. 어차피 입는 옷은 늘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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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라는 저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문장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간결하고 정확한,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문장. '~할 것 같다.'라는 불확실한 문장하나 없다. '해야 한다', '맞다', '아니다'로 마치는 문장들은 내가 다시 한 번 마침표를 찍어주고 싶을 정도, 통쾌할 정도다. 최근에 본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란 일본 드라마를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 드라마를 보며, 이 책을 읽으니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덕분에 버리기 스킬이 5% 상승한 것 같다. 곁에 두고 종종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매했다. 소유와 무소유의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 소유를 결심한 '대상'을 경험하는 게 결정하는 데 있어 수월하다. 근데 그걸 왜 '책'에는 적용하지 않았을까? 마구잡이로 쌓아놓은 선반 위 책들이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02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뭐라도 되고 있었다

김지희


p.19 좋아하는 데에 너무 많은 의미가 존재한다면, 게다가 그 의미들이 몹시 훌륭하다면, 그 '좋음'에는 마음보단 머리가 앞장서 작동했을 위험이 있다. 어쩌면 그런 종류의 '좋음'은 금세 시들해질지도 모른다.

p.40 좋은 사람을 새로 알게 되었을 때보다, 익숙한 사람에게서 새삼 새로운 면을 발견했을 때 더더욱 설렜던 것 같다. 

p.53 기준이 '나의 무엇'일 때: '나의 무엇'이라 함은, 내가 느끼는 감동과 설렘의 주기, 의욕의 정도, 열정의 지속성, 삶의 완급과 리듬 등 나의 내면과 관계된 것들이다. 이 중 하나에 또렷한 기준을 두어,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은, 언제나 풍요롭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여럿 가운데서도, 그 풍요의 아늑함을 누릴 수 있다. 이 한결같은 풍요로움은 더 가진 사람에겐 박수를, 덜 가진 사람에겐 위안을 건네는 여유를 선사한다. 그럴수록 난 호기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간다.

p.70 '아직'을 외치는 사람은 보통 도전의 과정 중에 있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직'을 외쳐가며, 어딘가 남아있을 자신의 저력을 있는 힘껏 끄집어 당긴다.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의 입에선 도통 '아직'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p.71 '아직도'가 삶의 무난함조차도 결핍으로 간주하는 조급함을 지닌 반면, '아직'은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건설적인 모양새로 바꾸어놓는, 혁신적 능력을 지녔다. (중략) 누군가 나에게 '아직'을 말한다면 나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이고, 누군가 나에게 '아직도'를 말한다면, 애처로움을 빙자한 엄연한 저평가다.

p.77 질투는 나를 명쾌하게 한다. 선택의 순간, 두 가지 기로에서 방황하게 될 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이룬 사람에게서 더 질투를 느낄 것 같은가?' 질투의 저울이 더 크게 휘청대는 쪽이, 가장 '나다운 선택'일 것이다.

p.84 신기한 것은, 가끔 성당에 들러 기도할 때에도 결국엔 건강과 행복을 선택하게 된다는 거다. (중략) 우리가 아무리 재물, 외모 등의 '얕은 욕망'들을 갈망하며 산다 해도, 결국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소망하게 되는 건 '깊은 가치'인가 보다. 단지 그 성품이 워낙 과묵하다보니, 평소에는 잠자코 지켜만 보다가 진짜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일 뿐. 알고보면 그런 종류의 '깊은 가치'들은, 게을러터진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절체절명의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p.90 가끔 '이기기 위해' 싸우려 들 때가 있다. 자고로 싸움 본연의 의미는 '문제 해결'에 있는데, 오로지 이기는 데에만 함몰돼가는 나 자신을 목격할 때가 있다. 상대의 말실수에만 안테나를 세우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볼품없는 모습이다. 

p.98 바위덩어리같이 무겁게 버티고 있던 분노의 요인들도, '그래서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뭔데?'라는 이 질문에 텅 비어 있던 휑한 속내를 들켜버리고 만다.

p.135 그때 그 시절 흑역사를 스스로 들춰내어 태연하게 얘기하는 이에겐, 항상 그 이상의 내공이 있다.

p.170 대단하기보단 대견하고 싶다. 대단한 무엇에는 대단함에 걸맞은 절대 조건이 숨어 있지만, 대견한 마음은 그런 절대 조건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언급한 이의 주관에 달려 있기에, 대견한 마음은 무조건 진짜다.

p.178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덕분에'를 덧붙이다 보면, 연결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오늘 내 모습이 유난히 화사한 이유는 그가 예쁘게 바라봐준 '덕분에', 그의 눈에 내가 예쁘게 보였던 이유는 마침 그의 컨디션이 최상이었던 '덕분에', 오늘 그의 컨디션이 유독 좋았던 이유는 몹시 기다렸던 합격 소식 '덕분에', 그가 떡 하니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묵묵히 빋고 기다려준 당신 '덕분에'. 일상의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태로운 날엔, '덕분에'를 뒤적여본다. 

p.202 자신이 마음 놓고 변화할 수 있는 건 늘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준 사람들 덕분이란다. 변화라는 건 안정감을 주는 존재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p.238 '그냥'은 세상에서 가장 순도 높은 감정이다. 어떤 생각도 감히 끼어 들어오지 못하는, 미세한 틈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태, '그냥'.

p.244 아무 의도가 없던 일에도, 왜곡된 의도를 연결 짓고 나면 불현듯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왜곡된 의도는 늘 어찌나 절묘하던지, 논리적으로 그 이상 탄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행동마다 의도가 있는 건 아니더라. 정말 '그냥'인 상태의 행동들도 제법 빈번히 일어나더라. 

p.245 내가 가장 열과 성을 다해 받는 전화는, 그냥 걸려온 전화다. (중략) 그래서 난, 기다렸다는 듯 그간의 시시콜콜한 이야깃거리들을 야무지게 들추어가며 수다를 늘어놓는다. 친구의 용건 없는 전화가 싱겁게 끝맺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수다력을 발휘한다. 

p.256 일이든 관계든 기왕에 하는 거라면, 뭉그적거리는 수동보단 능동의 '기꺼이'가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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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책의 제목과 내용이 동떨어져있단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처음엔 제목을 보고 읽었고, 나중엔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었으니 쨌든 다 좋은 것으로! 책을 읽는 내내 감탄을 했다. 단어가 주는 느낌을 참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용을 원한 건 아닌데,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의미로 얘기한 건 아니지만 듣는 사람에겐 이렇게 전달 됐을까?', '만약 다른 단어를 썼다면 어땠을까?', '그때 이런 말을 할 걸!', ' 앞으로 이런 상황에선 이런 말을 해보자' 등 익숙해서 잊고 있던 단어들을 하나하나 곱씹어보게 됐다. 책 어디에도 긍정적인 사람이 돼야 함을 강요하지 않지만, 책을 덮는 순간 나는 이 책 '덕분에' 무엇이든 '기꺼이'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