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화

from 2019 사진 2019. 4. 27. 03:44

결혼 후, 아빤 내게 자주 전화를 한다.

매일 한 번은 기본, 요 몇 달 사이엔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전화가 온다.


오전 10시쯤

출근은 했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날씨는 어떤지,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오후 4시쯤

혹시 퇴근했는지, 안 했으면 칼퇴하라며, 지금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밤 11시쯤

저녁 먹었는지, 아직 자는지, 오빠는 집에 왔는지, 지금 아빠는 어디에 있는지


오전 10시나 오후 4시는 아빠가 가장 한가한 시간임을 나는 안다.

밤 11시 넘어 전화가 오는 날이면 대리운전을 나간 날이다.

몇 달 전 건너건너 아는 사람에게 카카오 대리운전에 대해 듣고 

퇴근 후 운동 겸 심심풀이로 다니던 게 꽤 쏠쏠했는지

궂은 날만 아니면 항상 나가는 것 같다.


늦게 또는 새벽에 전화가 오면

오늘은 어디까지 갔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얼마를 받았는지 내가 보고(?)한다.


- 항상 다니기 편한 경로만 잡으면 나중에 일감이 잘 안 뜨더라 똑똑해

- 대리 부른 사람이 너랑 동갑이던데 결혼 준비 중인데 힘들다더라 네 얘기 좀 해줬지

- 원래 가려던 곳 보다 좀 더 멀리 가달라기에 가줬더니 만 원 더 주더라 허허

- 셔틀비도 아깝고 주황색 자전거에 500원 넣고 집 가는 중이야


아빠의 일일보고 덕분에 원치 않게 대리운전에 대한 지식이 쌓여가고 있다.

뭐가 그리 재밌냐고 물어봤더니 바로바로 앱에 수입이 찍히니 그 재미에 한단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하루 세 번 통화하고 다음 날도 전화를 받으면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사실 몇 번은 전화를 안 받은 적도 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아빠와 어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전화를 받고 무의식중에 질문하고 대답하는 날 발견했다.


전화를 안 받은 다음 날은 전화가 안 오거나, 한 통만 온다.

그럴 때면 내가 일부러 안 받은 걸 아빠가 아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는 표현에 익숙하다. (어떤 부분에선 아주 서툴고 때문에 밉지만)

'우리 큰 딸, 우리 딸, 주말에 내려오면 돈가스 사줄게, 큰딸 사랑해'라고 한다.

결혼 2년 차에 서른이 넘었지만 난 아직도 좀 더 가까이에서 엄마아빠의 온기만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온기뿐만 아니라 품도 내어줄 사람들이지만 




매일 1~2분 남짓한 통화들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난 이제 아빠 목소리만 들어도 오늘 하루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아빠가 힘든 날에는 내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다. 만원 지하철인데도 목소리가 커진다.


아빠가 또 돈가스 사준단 전화를 해주면 좋겠다.

쨌든 새벽에 아빠가 보고 싶어서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