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새벽까지 일정을 제대로 짜고 경로까지 확실히 하고 마음을 확실히 잡고! 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났는데 세상에나. 미친 듯이 안개가 껴서 하늘이 뿌옇게 되어있었다. 아니, 오늘 일정의 첫 번째가 페리 타고 자유의 여신상 보러 가는 건데 아니 이럴수가요? 뉴욕 야 죽을래







침대 위에서 30분간 안개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금씩 안개가 사라지는 것 같아 순서만 변경해서 다니기로 했다.

뉴욕에 와서 이틀 동안은 걸어다닐 수 있는 곳만 다녀서 메트로를 끊을 이유가 없었는데 월스트리스까지 가려면 걸어갈 순 없어서 메트로를 타고 가야 한다. 이곳의 교통비는 버스, 지하철 모두 2.25불. LA는 1.50불인거에 비해 확실히 비싸긴 하다. 7일 일주일 패스를 끊으면 메트로카드값까지 해서 30불 정도 된다던데 나는 당연히 그 정도는 안 타고 다닐 줄 알고 이틀째까지 안 끊고 있다가 오늘 처음 도전하기로 했다.


타임스퀘어 역으로 가서 자동판매기에 New MetroCard! 하고 10불만 충전하려고 했는데 캐쉬 자체가 안 들어간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듯? 어쩐지 기계에 문제가 있어서 다들 역무원 쪽으로 줄을 서 있었구나. 나도 줄을 서서 I want buy new metro card. 라고 했더니 얼마 충전 할거냐길래 10달러 했더니 카드값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을 넣어줬다. 




악명높은 뉴욕 지하철을 탔다. 근데, 엥? 생각보다 깨끗하고 사람도 많고 전혀 위험하지도 않던데? 지하철역사는 어두컴컴하지만 쨌든 지하철 잘 오고, 표지판 잘 되어있고 이용하는 사람 많아서 전-혀 문제 될 게 없어 보였다. 오히려 LA는 땅덩어리가 넓어서 지하철도 쓸데없이 넓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사람이 많아도 많아 보이지 않고, 지하 깊숙이 만들어놓아서 에스컬레이터도 존나 길고 아래쪽은 어두컴컴하고. 뉴욕처럼 많은 지역이 관광지가 아니라 훨씬 위험한 듯. 근데 진짜 뉴욕 지하철 걱정 하나도 안 해도 된다.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라고 하는 지역. 별 정보 없이 내가 아는 거라곤 9/11 테러가 난 곳에 추모형식으로 공원을 조성해 놓은 것과 근처에 그들을 추모하는 교회 내부를 구경하는 것, 그리고 뉴욕파이낸셜센터, 볼링그린, 이정도였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양복 입고 걷는 멋진 직장인들을 생각했는데 그들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관광객들 많은 쪽으로 가다 보면 대부분의 관광지는 다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다 사진 찍길래 찍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깐 이게 바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 (World Trade Center) 이게 완공되면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다. 그리고 그 옆에 9/11 Memorial (Ground Zero) 이라고 적힌 곳으로 따라가 보니 이곳에 들어가려면 철저한 소지품 검사와 기부를 통해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정도로 관심 있지는 않아서 주변의 공사현장들을 사진에 담았다. 


















세인트 폴 교회 (St. Paul's Chapel)

이 교회는 9/11테러로 인해 다친 사람들을 수용하고 치료했었던 건물이다. 그래서 내부에는 9/11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과 소지품, 많은 사람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 사람들과 학생들이 견학을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남겨진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고 기록하고 있었다.
















길을 걸어 올라가니 트리니티 교회 (Trinity Church) 도 보였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맞은편이 그 유명한 월 스트리트!(Wall Street) 

표지판 하나 먼저 찍어주고 슬슬 내려가서 사람들이 사진 찍는 곳으로 따라갔다.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가 보였다. 그 맞은편엔 어떤 동상 하나가 있었는데 하 지식이 부족해서 이게 무슨 동상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이 근처에 서서 여러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볼링그린에 유명한 Charging Bull황소의 거시기를 만지면 뭐? 행운이 온다는 그 동상인가? 역시나 그 부분만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여긴 중국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사진 하나 건지지 못하고 구경만 슥 했다. 그나저나 내가 찍은 저 꽃무늬 치마 언니 적나라하게 나왔다. 행운이 있길!



















황소상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자유의 여신상 무료 페리를 타는 곳으로 잘 알려진 스테든 아일랜드 페리(Staten Island Ferry)가 보인다. 안개 가득 낀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봐도 색다르겠단 생각에 무작정 타러 들어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12시 정각에 있는 페리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 페리는 원래 스테든 아일랜드로 향하는 통근자들을 위한 페리였는데 이게 자유의 여신상 근처를 지나가다 보니 관광객들도 많이 타게 되었다고. 타고 갈 때 오른쪽에, 다시 돌아올 때 왼쪽에서 보면 자유의 여신상을 볼 수 있다. 유료 페리와는 다르게 갑판에 나가서 볼 수는 없고 뱃머리와 끝쪽에서 조금 볼 수 있다.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갔는데 혼자 슥슥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뷰를 발견해서 사진을 꽤 남겼다. 안개 낀 자유의 여신상을 보니깐 영화 클로버필드가 생각났다. 크 그리고 곧바로 돌아오는 페리를 뛰어가서 탔다. 딱 1시간 만에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했다. 나중에 밤에 오면 진짜 아름다울 것 같다. 이제 너무 배가고파 뭐 좀 먹어야겠다 싶어서 역 밖에 버스정류장에서 M15번 버스를 타고 소호 (SOHO) 근처에 내렸다. 버스도 처음 탔는데 이 버스는 왜 요금을 안 내지? 쨌든 다들 안내니깐 나도 안 냄. LA와 똑같이 줄을 당겨서 내릴 역을 표시한다. 













Russ & Daughters! 크림치즈 + 스모크 살몬 + 베이글! 들어가자마자 번호표를 뽑았더니 내가 바로 다음 사람이다. 할머니가 주문을 받길래 플레인 베이글 했더니 그런 건 없고 대신에 이런 건 있는데 주절주절 하는데 내가 알아들은 건 MIX밖에 없어서 그냥 MIX로 하고, 대중적인 크림치즈와 스모크 살몬을 주문했다. 훈제의 정도를 more? less? 라고 물어보길래 more! 이라고 했다. 


이곳은 맛좋은 생선들과 최고의 치즈들이 주 판매 품목이고 다른 것도 많아 보였는 데 사람도 많아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 주문을 받고 음식을 포장하고 만들고 계산하는 걸 봤는데 특히 할머니께서 내 베이글을 만들어주는 걸 투명한 유리를 통해 봤다. 하나하나 느긋하게 정성스럽게 치즈를 바르고 살몬을 올리고 베이글을 올리고 손으로 꾹 누른 다음에 칼로 반을 뚝- 잘라주고 얇은 비닐 한번, 포장지 한번, 노란 봉투에 한 번 더 넣어준다. 따로 먹을 곳은 없고 밖에 벤치 2개가 있는데 그곳은 항-상 만석!










 



 




약속시각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우선 살 게 있는 매장부터 들리기로 했다. 뉴욕 프라이탁 매장 (Freitag NYC, 1 Prince St, New York, NY 10012) 항상 구글맵으로만 봤던, 그 모퉁이에 그 매장이 내 눈앞에 있다니. 내가 들어가기 바로 전에 어느 멋쟁이 남자가 들어가길래 봤더니 매장직원이었네. 크크 매장 크기와 제품 수는 한국의 이태원 매장보다 훨씬 작다. 그래도 사람들이 끊이질 않고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나는 의자에 내 짐을 다 던져놓고 이것저것 모든 제품을 다 매보고 거울에 비춰봤다. 


마침 리랜드에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컬러가 있어서, 이걸 한참이나 거울에 비춰보다가 바로 결제했다. 옛날부터 사고 싶었는데 뭔가 늦은 유행따라 산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무난한 컬러라 가방에 짐 많을 때, 비 올 때 갖고 다니면 짱 좋을 것 같더라. 리랜드 가격은 210불! 가격은 한국보다 확실히 저렴했다. 택스 포함하니 228.64불! 






본격 소호거리로 들어왔다. 진/짜/로 여기에 뉴요커란 뉴요커는 다 모여있었다. 사토리얼리스트 책에 나올법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걷고 있었고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런웨이에서나 볼 수 있는 금발 언니와 훈훈한 오빠들이 Hi라며 인사해주었다. 아 황홀해. A.P.C. 에 들렀는데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제품이 없었고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 했다. 뭔가 민망함. 나랑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듯한 아리따운 언니 오빠들이 다 날 보고 있어...그렇게 나와서 약속시각에 맞춰 약속장소인 애플 소호점으로 갔다. 






 



애플매장에 있는 화장실에서 짐 정리하고 잡동사니들을 프라이탁 가방에 옮겨 담았다. 정신없이 짐 정리할 때 전화가 왔었는데 받질 못하고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이 왔다. 짠! 정말 반가운 분을 뉴욕에서 만났다. 내가 디노마드에서 한창 잡지 촬영할 때 인터뷰촬영을 하게 된 윤상혁씨! 3년 전에 외대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 촬영을 했었는데 그때 딱 한 번 뵙고 나서 내가 뉴욕에 간다고 했더니 뉴욕 오면 연락하라고 하셔서...! 인터뷰 마치고 학교 졸업하고 제대로 사진 전공하러 뉴욕에 오신지 2년째? 그 사이에 결혼도 하셔서 뉴욕에서 신혼을 보냄과 동시에 공부도 하고 사업(가게!)도 하고 계신다고! 



근데 막 어색하지 않고 가끔 봤던 사람처럼 편안했다. 나도 사진 일을 했고, 그래서 그런지 나눌 수 있는 대화들도 잘 통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 많은 소호 거리를 걷다가 커피 한잔 마시러 Gimme Coffee (228 Mott St, New York, NY 10012)로 향했다. 소호에서 핫한 커피숍이라고 했다. 나는 마끼아또를 주문했더니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둘 다 못 알아들음. 원두의 종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그냥 가장 일반적인 걸로 부탁했다. 그랬더니 커피가 반밖에 안나옴...하하하하. 그 커피를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가 자리 잡고 앉은 곳이 워싱턴 스퀘어 파크 (Washington Square Park)! NYU (New York University) 학생들의 캠퍼스처럼 쓰이고 있는 공원으로 자전거 연습하는 젊은이와 보드 연습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그 앞에 유명한 건물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다. 거기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카메라 이야기도, 직업 이야기도, 뉴욕에서의 이야기, 한국에서의 이야기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살 게 있어서 함께 첼시쪽에 있는 A.P.C.에 갔다. 이곳에서 A.P.C. 지갑을 바로 구매했다. 흐흐흐 돈이 펑펑 나가는구나. 그리고 그 근처에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여주인공이 살았던 집! 앞까지 가봤다. 밤이었는데도 몇몇 사람들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이제 슬슬 브루클린으로 넘어갈 생각에 역 앞에서 헤어졌다. 뉴욕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꼭 보기로 약속하고!












전철을 타고 브루클린 다리를 넘어 High St 역에 내렸다. 브루클린 오기 이렇게 쉽다니? 겨우 5시 조금 넘었는데 밤 11시 같은 어둠을 해치고 덤보 (Dumbo)로 향했다. 어두워서 하나도 안보였지만 왔다는 걸 기념으로! 덤보 사진을 찍고 걸어서 브루클린 브릿지 파크 (Brooklyn Bridge Park)왔다. 

















브루클린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야경! 한참 반해서 촬영하고 쌀쌀한 날씨 때문에 빠르게 다시 맨해튼으로 들어왔다. 브루클린 다리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어두워서 뭔가 위험한 느낌이었다.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차들만 쌩쌩 다니고 해서 밤에 오기엔 조금 무서웠다. 근데 밤도 아니었는데 진짜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 아우!












맨해튼으로 넘어와서 숙소에서 짐 정리랑 몸 좀 녹이고 아까 사둔 베이글을 반만 먹었다. 아 진짜 맛있었다. 짜증 나게 맛있었다. 생각해보니 이게 첫 끼구나? 하하하하 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잘도 돌아다녔다. 배 좀 채우고 42st 주변에 주요 건물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로 했다. 



























브라이언트 공원 (Bryant Park)의 밤은 화려했다. 무료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좋아 보여 한참 난간에 기대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나도 타고 싶었는데 나 스케이트 못 탐. 쩝. 가운데에 위치한 큰 트리도 예뻤고 주변에 소소하게 열려있는 상점도 귀여웠다. 그, 스케이트 타는데 분-홍 조명이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 앞에 있는 의자를 아무거나 가지고 와서 아이스링크장 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 발만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한 라떼 한잔 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지금 이 분위기를 더 즐기고 싶었다! 










바로 옆에 있는 뉴욕 공립 도서관 (New York Public Library)의 밤도 화려했다. 건물 안에 불은 화려한데 사람들이 들어가지는 않는 걸 보니 따로 방문시간이 있겠지.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멋스러운 건물의 조화가 참 좋더라. 


















사진 몇 장 남기고 좀 더 걸어서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Grand Central Terminal)까지 갔다. 밤 9시 넘어서까지 터미널 내부를 돌아다녔다. 100년 넘은 기차역에 자연스럽게, 어색하지 않게 위치한 애플스토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한 것 같다. 











아아 섹시한 NYPD가 모여있어. 장난 아니야 아아아아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이 한다는 마켓에서 라면 1개랑 Blue Point라는 맥주를 하나 사왔다. 처음엔 영어로 ID를 물어보길래 여권을 꺼냈더니 주인아저씨가 한국말로 한국사람이냐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고 하셨다. 크크크 그걸 사 들고 숙소로 들어와 아까 먹다가 남은 베이글에 맥주 한 병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Metro Card 15$

FREITAG 228.64$

A.P.C. 272.19$

Russ & Daughters 12$

merci market (맥주, 라면) 10$ (??)


총 53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