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진

책 세 권 기록 (식물 저승사자, 하루의 취향,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김온더테이블 2019. 5. 9. 00:09



식물 저승사자

글 정수진 그림 박정은


p.60 어느 날 인터넷에 검색하다 웃자란 선인장의 사진은, 적어도 한국 웹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건 선인장이 웃자라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웃자란 선인장은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키우는 용신목이 기대와는 다르게 자랐을 때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게 되었으니까. (용신목)

p.88 예민함은 결국 '키우려 했을 때의 어려움'에서 야기되는 예민함이다. 키우려 하지 않으면 잘 자랄 수 있을까? 이건 한 사람의 마음가진보다는 조금 더 거대한 문제인것 같다. (율마) 

- 율마, 우리 엄마는 율마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그리고 아주 잘 키워냈다. 난 그래서 여태까지 율마라는 식물이 집에서 쉽게 키우기 좋은 식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마는 캘리포니아 해안가에서 풍성한 햇빛 아래 소금기 어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매일같이 맞으며 자라던 식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환경에선 몹시 자라기 어렵고 굉장히 까다로운 식물이라고 한다. 엄마가 왜 율마만 골라서 키우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물어봐야지. 참고로 율마의 맨 아래부터 머리까지 손으로 슥- 훑은 뒤에 향기를 맡아보면 생각보다 꽃향기 같은 게 난다. 

p.111 단단하게 속이 찬 다육질에 큰 부피를 가진 그 선인장이 죽은 모습은 마치 생명이 떠난 작은 동물같이 보였다. 여타 식물이 죽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격이었다. (부채선인장)

- 예전에 선인장을 선물받았는데 난 정말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거뭇하게 썩어버린적이 있다. 초록색의 몸이 시커먼 재처럼 변했을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p.126 잘 자라주는 식물로부터 용기를 얻고 있어서 마침내 새로운 식물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침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은 정말로 식물을 좋아하지만 잘 키울 자신이 없어 둘 이상 들이는 것에 오래 망설였기 때문이다. (칼라데아)

p.178 환경에 유달리 예민한 식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모두가 키우기 어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식물이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식물이 조금 더 날 필요로 해주고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아디안텀)

p.194 산세베리아 아빠는 왜 자꾸 산세베리아만 가져올까

p.201 나는 아빠가 산세베리아를 가져온 시기와 내력을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지억을 하고 있는지 잠시 놀랐으나 이내 떠올랐다. 이렇게 다 큰딸들을 앞에 두고서도 '큰 애'와 '막둥이'의 엉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종종 저 멀리 시간 여행을 하실 때면 가끔은 어제 일보다도 더 정확히 기억을 하곤 하시던데 아마 그런 것 아니었을까. '반려식물'이라는 명칭이 유행할 정도로 사람들은 식물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는다. 비단 최근의 유행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부터 식물을 보고 쓰다듬으며 말 없는 대화를 나누던 어떤 이들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식물은 시간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하나의 역사이자 추억이 된다. (산세베리아)

- 우리 엄마의 화단에도 이건 몇년도에 너희 아빠가 회사에서, 이건 네가 지난 몇월에 촬영 하다 남았다고 가져왔고 이건 언제 저건 언제 라며 화분 하나하나마다 탄생일을 외우고 있다. 

p.230 식물 기르기의 난이도를 보자면, 관리하는 사람의 생활 습관 등에 의해 조금씩 기준을 달리해도, 어떤 식물들은 대체로 난이도 '하'에 분류할 수 있다. 그중 스파티필름은 난이도에선 '최하'라고 생각하는 식물이다. 

- 이케아에서 사온 스파티필름, 여행 동안 뜨뜻한 온돌 바닥에 두고 방치했더니 축 처져 죽어있었다. 아무리 물을 주고 햇빛에 놓아보아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초록 잎과 줄기들이 힘없이 떨어진 모습은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

결혼 선물로 받은 선인장이 용신목이라는 이름을 가진 걸 알게 됐다. 특히 책 속의 일러스트가 우리 집 용신목과 똑같아서 스토리에 @공간식물성을 태그했다. 작가님과 DM으로 귀여운 대화를 주고 받았네. 율마가 세상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란것도 알게 됐고, 내가 죽인 스파티필름이 기르기 난이도 최하라는 것도 알게 됐다. 또 다른 식물을 '마침내' 들일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그때 꼭 공간식물성에 가야지.




하루의 취향

김민철

p.43 제발, 게으른 나여. 제발, 집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 보자꾸나. 오늘을 좋은 날로 만들어보자꾸나. 선배의 말대로 좋은 날이 오면 최대한 늘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고, 오늘은 그 의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이 될지도 모르니까.
p.64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누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일이라도 그 일에 기어이 영혼을 불어넣는 사람들. (중략) 그 경지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까이해야 한다. 그 에너지가 나에게까지 전파되니까.
p.76 불확실한 것이 많을수록 가장 확실하게 기댈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들로 완성한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나는 쉽게 행복에 도착한다.
p.112 겁이 덜컥 났다. 불과 1~2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넓어진 취향으로 누군가의 취향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뾰족해진 취향으로 누군가를 콕콕 찌르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나. 이러다 나중에는 누군가 고수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치즈를 한 입만 먹고 뱉어버리면,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별로라고 말하면, 그 사람과 나는 안 맞다, 라고 섣불리 결론 내려버리면 어쩌나. 그러다 결국 "도대체 나와는 맞는 사람이 없어"라고 습관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나는 내가 걱정되었다.


/

자신의 할말만 늘어놓고 결국 뭘 얘기하고자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직장, 결혼, 연애, 페미니즘, 여행 뭐지? 특히 어딘지도 모르겠는 여행지 이야기들이 나왔을땐 지금 내가 여행 에세이를 보는건가 싶었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신미경

p.17 다른 사람의 선택을 걱정이란 이름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P.46 일요일은 일주일 치의 식단을 짜는 날이 된다. 표를 만들어 단백질과 채소, 탄수화물, 지방으로 칸을 나누고, 단백질 음식 재료를 중심으로 주인공이 될 메뉴를 정한다. 날씨 예보를 보고 서늘한 날 마음마저 따듯하게 하는 전골을 메뉴에 넣기도 하며, 그날의 기분이나 활동량에 따른 열량을 상상하는 것이 식단 으 계획할 때의 포인트. 식단대로 먹었는지 하루를 기준으로 점검하고, 덧붙이는 말을 쓰는 칸을 두어 건강 상태가 안 좋았거나 후회되거나 특별히 기억나는 메뉴가 있었다면 나중에 참고하려고 적어둔다. 그리고 좀더 재미있게 먹고 살려고 홈메이드 식단에 백반집처럼 메뉴이름을 종종 붙여본다. 낫또 생선구이 정식, 채소 듬뿍 카레 정식, 리얼 게살 볶음밥... 오늘 신메뉴로 개발한 멍게 비빔밥도 만족스러웠으니 개성 있는 이름 그대로 고정 식단에 올려본다.
P.89 당장의 편안함에 지지 않는 일상이 결국 크게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는 단순한 생활을 만든다.

p.110 일상이 문득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을 억누르는 큰 고민거리 없이 어제와 똑같은 일이 평온하게 반복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생각해보면 일, 인간 관계, 먼 미래와 같이 늘 걱정거리를 만들며 사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지금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 없이 특별한 고민이 없으면 용케 작은 것 하나라도 우환거리로 만들고 마는 나쁜 습관. 이제 지루함을 즐기며 설레는 일보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염려 섞인 바람으로 아침을 맞이한다.

p.112 사소한 만족이 쌓이고 쌓여 단단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과거의 자신을 칭찬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중략) 나의 일상적 행복 의식은 충분히 예상되는 가까운 미래의 필요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다시 이 슬리퍼를 신을 나를 위해 신기 편한 방향으로 바꿔놓는 일처럼.

p.122 우리 집은 완벽하지 않다. 옷은 각을 잡아 접어두지 않았고, 먼지 한 톨 없이 살기 위해 걸레를 손에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욕실에 물 얼룩 하나 없는 것이 가능한가? 누구나 자신이 만족하는 수준이 있을 텐데, 나는 나에게 높은 성취를 요구하지 않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나를 맞아주는 현관에는 아무런 신발이 놓여 있지 않다. 집 안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매끄러운 바닥이 나를 맞이한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

p.152 서민이면서도 명품을 걸쳤던 이면에는 스타일은 두 번째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이 싫었던 내가 있었다. 화려한 친구들 사이에서 같은 그룹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에 신상품 정보에 열을 올렸던 친구들은 이미 결혼해서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그런 찰나의 관계를 위해 참 많은 돈을 썼다. 

p.165 지난 직장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은 자신이 점점 AI(인공지능)가 되어간다고 했다. 감정이 없이 사무실에서 일만 하는 그런 기계 같다고. 우리가 AI가 되기 전에 우리는 일과 자신을 동일하게 두고 바라보았다. 일에 대한 평가를 받을 때 나 자신 전체를 평가당하는 그런 기분을 곧잘 느끼곤 했을 만큼. 일과 나는 다르다. 일은 내가 해낼 수 있는 능력 중 하나고, 가끔 성취감과 이 세상에 내가 보탬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 자체를 나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일로 생계를 해결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소속감과 명함 하나를 얻었지만,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p.167 지금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시작이라도 할 수 있다면,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부딪혀보았는데 깨지고 실패한다면 배울 수 있고 행동을 수정할 수 있다. 미지의 분야에 겁을 먹고 이러쿵저러쿵 상상만 하면서 결국 안 될 거라 결론 내리고 시도조차 안 해보는 일보다는 훨씬 낫다.

p.180 승진이나 더 높은 급여는 환영하나 삶을 송두리째 바칠 만큼 감사하지 않고, 동료들과 잘 지내는 것과 회사의 목표와 방향성에 맞춰 일하는 것은 기본이나 회사만 믿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자면 필요한 것이 내가 잘하는 일로 언제 어디에서나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갖는 것이다.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 변하지 않는 방향이다. 

-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라, 깊이 생각해보게 됐던

p.192 혼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

p.215 젊은 날에는 비슷한 취향의 친구와 노는 게 재미있었다면 중년에 다다르는 나이에는 유대감이 더 중요해진다. 묘한 동지 의식 같은 것.

p.227 새로운 경험을 물건이 아닌 글로 수집하는 즐거움은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읽어 보면 꽤 흥미진진하겠지. 그중에 하나쯤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글 모음이 될지도 모른다. 특별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성향이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되어주지 않을까 문득 생각해본다.

p.239 미래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하다면 지금을 점검해본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될 테니까.



/

문단에 킬링포인트가 없어서 좋은 문장 수집이 어려웠다. 파트 중간중간에 나오는 작가의 리빙포인트. 내가 혼자 사는 사람이었다면 똑같이 할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약간 숨이 막히기도 했다. 나와 연결돼있는 모든 것들을 작은 바둑판 위에 올려 정확히 한 포인트에 위치시키고 절대 나가지 못하게 가둬놓는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존감 부분에선 많이 배우고 힘을 얻었다. 지금의 내가 쌓여 미래의 내가 된다는 것, 그러니 과거의 나를 칭찬할 일이 많도록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