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사진

책 3권 기록 (주말엔 옷장 정리, 아무튼 술,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김온더테이블 2019. 7. 17. 23:09

주말엔 옷장 정리

이문연 저

김래현 그림


p.23 '입을 옷이 없다'라고 느끼는 건 옷을 적게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삶에 필요한 옷이 적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내 모습을 드러내줄 옷이 적어서예요. (중략) '삶'과 '취향'이 변하면 옷장도 변해야 합니다. (중략) 그래서 옷장은 '지금의 나'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p.38 현재의 멋을 찾으려면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의 나'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맞지 않는데도 버리지 못하는 옷들이 나를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옷장은 어쩌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p.46 입었을 때 왠지 자신감이 떨어지는 옷은 비웁니다 - 옷은 사람의 심리에 생각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표정에 자신감이 가득 차게 되죠.

p.51 속옷 - 끈이 늘어나서 자꾸 흘러내리는 브라 - 가슴을 너무 압박해서 입으면 답답한 브라 - 잘못 빨아서 컵(가슴 부분)이 쭈글쭈글해진 브라 - 보풀이 많이 일어난 팬티 - 가랑이 사이 피부를 자극하는 팬티

p.68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라는 질문은 '오늘의 나는 어떤 느낌이고 싶은가?'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p.134 수선비를 아끼지 않아야 잘 입는 옷으로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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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할 때 가장 오래 시간을 쓰는 일이 바로 옷을 고르는 일이다. 맘에 들지 않은 옷을 입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를 반영하는 옷은 알고 있지만 왠지 항상 똑같은 사람처럼 보일까봐 색다른 도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즐겨 입던 옷으로 돌아오기 마련. 그래서 도전하는 비용을 아껴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사되 질이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구입하고 있다. 나에게 딱 맞고 편하며 어울리고 아껴주며 오래오래 입을 수 옷. 그게 최고다! 참, 보여지는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속옷도 매우 중요하다. 늘어나고 쭈글쭈글한 속옷은 다 버리자.





아무튼 술

김혼비


"최종 진실을 내놓기 전에 고트족처럼 적어도 두 번은 문제를 놓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로렌스 스턴은 이 점 때문에 고트족을 좋아했는데, 고트족은 먼저 술에 취한 상태로 토론하고 이후 술이 깬 상태에서 또 한 번 토론했다." 다뉴브,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p.17 앞으로 그들이 술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술 역사의 시조로서 기억 속 어딘가에 초상처럼 그려져 있고 싶기도 했다.

- 처음으로 술을 마신 게 중학교 2학년때다. 보라라는 친구가 술을 살 수 있는 슈퍼를 안다며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심지어 교복을 입고 갔는데도 우리는 카스 두 캔을 살 수 있었다. 검정 봉지에 담겨 내용물이 무엇인지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소중하게 품고 어느 아파트에 들어가 꼭대기층을 눌렀다. 옥상 입구 문 앞에 걸터앉아 마신 카스의 맛은 아직도 기억난다. 시원하고 톡 쏘는 단맛없는 보리차를 마시는 느낌이었지. 보라는 잘 지낼까 하하하하 보라는 내 인생 술 역사의 시조구나. 그렇게 남아있구나.

p.20 기억은 하나도 못 하는 주제에 먹은 것은 이렇게나 많다니, 뇌는 없고 위만 있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 고등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술집에 갔다. 나는 소맥 두 잔에 졌다. 그날 기억나는거라곤 500cc 맥주잔에 소맥을 마셨다는 것과 친구가 내 등을 두드려주고 있었고 나는 좌변기에 시원하게 토를 하고 있던 것 밖에는

p.76 술꾼들끼리의 밥 먹자는 약속은 결국 술먹는 약속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p.80 그 사람이 집 안에 숨겨두거나 남겨둔 모습 말고 그가 집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기로 선별한 모습, 딱 그만큼까지만 알고 대면하고 싶은데, 집 안 구석 어딘가에 묻어 있는 무방비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면모, 이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나름 매일매일 실존적 불안과 싸우고 있으며 누군가의 소중한 관계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상기시켜주는 흔적을 봐버리면 필요 이상의 사적인 감정과 알 수 없는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 생겨 곤란하다. 게다가 집은 대개 말이 많다. 모든 사물들이 집주인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는 걸 내내 듣다 나오는 건 제법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p. 137 그러니 작은 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료들이여, 지금 당장 감당할 수 없다면 때로는 나의 세계를 좀 줄이는 것도 괜찮다. 축소해도 괜찮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계를 확장하라고, 기꺼이 모험에 몸을 던지라고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지만 감당의 몫을 책임져주지는 않으니까. 감당의 깜냥은 각자 다르니까.

p. 159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을까요?" 당연하지, 인마. 이 질문은 왜 항상 꺼내놓고 나면 이렇게나 바보 같을까? 몸 낫자고 간 병원에서 꺼내면 특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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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술 역사는 어땠는가! 를 떠올리며 참 재미있게 봤다. 아무튼 시리즈 중 가장 즐겁게 본 것 같다. 나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많은 분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곱창전골집에서 파인아트와 자본주의에 대해 토론했던 날, 금방이라도 천장이 내려 앉을 것 같은 피맛골에서의 막걸리와 고갈비 그리고 장난감 총, 기본안주에 인당 소주 2병씩 비우고 옆 테이블이 남기고간 계란말이 가져올까 말까 고민했던 수리산역 근처 술집, 해 뜰때까지 마셨던 한강난지캠핑장과 옆 테이블이 쏟았던 우리 양주, 유행이라던 꿀주를 마시고 취했던 친구의 신랑을 소개 받은 날, 눈만 마주쳐도 술과 안주를 척척 준비하는 우리 부부까지 흐흐 나의 이 술배는 다 허투루 생긴 게 아니란 말이지.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봉태규


p.21 모자라도 괜찮다. 누군가 빈 곳을 채워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려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은 부족하고 모자란다고 맘껏 부딪치며 울부짖을 줄도 알아야 한다. 

p.27 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못 알아듣는 이유가, 나이가 어리고 미숙하기 때문이라는 착각. 살아온 삶이 짧은 아이들은 그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것을 모르는 것뿐이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경험하지 못하면 당연히 모른다. 이사를 하는 것도,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도 시하는 전혀 모르는 영역이다. 이해하고 싶어도 다다를수가 없다.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니까. 이런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고, 못 알아듣는다고 속상해하고 서운해하다니. 역시나 가장 이기적인 건 언제나 나다.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도 날 먼저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쁘게도.

p.31 결혼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고 국가의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다른 구성원들의 상태를 먼저 헤아려줄 수 있는가. 나의 상태를 맨 마지막으로 놓아둘 수 있는가. 이것도 그나마 최소한의 조건이다.

p.70 그런 시하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체온을 다시 재고 침대에 눕힌 다음 등을 토닥거리며 재운다. 이 일련의 과정 중에 시하는 0.0000000000000000001%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내게 의지한다. 그게 너무 무섭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