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사진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015 마붑 알엄 나는 지구인이다

김온더테이블 2012. 10. 26. 00:50



나는 지구인이다(우리시대젊은만인보15)

저자
마붑 알엄 지음
출판사
텍스트. | 2010-08-23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방글라데시산 이주노동자가 코리안 드림의 허상을 깨치는 데는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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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23

꿈이 있고 뭔가를 하고 싶은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재미를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은 내가 변화하는 과정에 큰 힘이 됐다.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먼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당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문화적인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던 것은 아니다. 동네 양아치들과도 일부러 같이 다니곤 했다. (중략) 나는 이 친구들과 조금 더 새로운 일, 조금 더 강해질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동네 애들과 수다나 떠는 그런 종류의 일은 아니었다.


p.032

나에게 한국은 그저 우리 형이 일하는 나라였을 뿐이다. 올림픽을 치른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주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 방글라데시보다 추운 나라, 개고기를 먹는 나라, 분단 된 나라, 그리고 북한을 마주하고 있어서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위험한 나라...


p.071

나는 그들이 이주노동자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즈음 S 단체에 있는 어떤 신부님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외국인 노동자의 아버지, 마석의 ㅇㅇ신부'. 이런식의 타이틀이었다. 그걸 보자 갑자기 화가 났다. 

"아버지는 무슨 아버지! 이주노동자들이 어린아이들도 아닌데... 우리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잖아!"

SN for MRF나 평등노조 이주지부 활동가들이 좋았던 이유는 우리를 주체로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이주노동자들의 문제야. 우리들의 문제가 단지 몇몇 단체들의 도움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어. 이주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활동이 필요해!"

그들에게서 '우리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힘 있는 교회, 이름 난 목사님이나 신부님에게 의지만 할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입으로 자기 문제를 말해야 했다.


p.073

그렇게 S 단체와 멀어져 갔다. 언제까지나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 받을 순 없었다. 공동체 대표들에게만 잘해 주면 된다는 식의 태도도 더 이상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떤 점에서는 맨 처음에 만났던 교회 사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종교적인 간섭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우리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태도는 너무 불편했다. 아무리 종교 지도자라지만 우리를 아이처럼 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발언 기회를 얻기 힘들었다. 혼자만 발언하고 끝을 낸다. 아무렇게나 하는 반말도 듣기 싫었다.


p.117

<쫓겨난 사람들>은 그 쫓겨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중략)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우정과 사랑을 느끼고, 한국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한국을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그들이 한국을 기억에서 지웠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쫓아내면 그걸로 끝이니까... 한국은 쫓아낸 사람들까지 기억하지는 않으니까... 


p.120

가난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 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가난의 책임을 다 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가난은 사회와 개인이 함께 풀어 가야 할 숙제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나는 이런 일에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싶었다.


p.121

그들이라고 이주노동이 좋아서 그런 현실을 택한 게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이고, 어느 딸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다. 나는 나의 카메라를 통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주를 해서 사는 사람이라고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p.151

매닉은 지금 직장에 다닌다. 힘들게 생활하는 게 눈에 빤히 보인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매닉에게 미안하다. 나는 정해진 직장이 없으니까. 물론 바쁠 때는 아주 바쁘지만, 어디에 얽매여서 몇 시에 출근을 하고 몇 시에 퇴근을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다.

"아, 이거 때려칠까? 이런 일 하지 말고 어디 가서 취직할까?"

내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매닉은 대답했다.

"우리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좋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p.168

사람들은 이런 문제가 생기면 '독일은 어떤가?' , '미국은 어떤가?' 하면서 비교를 한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그 정도가 덜하면 괜찮은건가? 


p.171

인정할 걸 인정하면 사실 조금 더 편해진다. 더 많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눈감고 현실을 보지 않는다고 현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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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구만

<반두비> 라는 영화 한창 프로모션할때 기억나는데 거기에 남자주인공으로 나온 마붑 알엄씨

이주노동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며 방글라데시 출신의 미디어 활동가. 1999년에 노동자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가 2001년 남양주 지역 방글라데시 공동체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폭넓게 활동하고 있다. 2007년 다큐멘터리 'Boishakhi'를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을 연출하였으며 2008년에는 <로니를 찾아서>, <반두비> 등에서는 주연을 맡아 연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쫓겨난 사람들>(2007, 마붑 알엄) 감독

<나의 친구, 그의 아내>(2008, 신동일) 

<로니를 찾아서>(2009, 심상국) 

<반두비>(2009, 신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