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사진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012 한 받 탐욕 소년 표류기

김온더테이블 2012. 11. 18. 01:06



탐욕 소년 표류기

저자
한받 지음
출판사
텍스트 | 2010-03-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니, 아니, 아니에요, 나는 그저 탐욕스런 소년이지요 여고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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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14

내가 내 두 다리를 이용하여 걸으면 걸을수록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발생된ㄴ 것을 매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확실히 생각의 발생 빈도가 준다


p.019

다만 한가지 놀라왔던 점은 사람들이 나누어져 근무하고 식사하는 모습이었다. 사무직과 연구직, 그리고 실제로 기계를 만지면서 근무하는 생산직 직원들이 확실히 구분되어 일을 하고 밥을 먹었다. 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밥을 함께 먹지 않을까? 정말 이 회사는 이상하지 않은가. 몇 년이 지난 후, 더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그런 상황을 상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p.025

뭐든지 재밌다 싶은 이미지들은 내 것으로 녹여내리던 시기였다.


p.030

행복은 느낄 수 없고 다만 회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은 기억할 수 있을 뿐. 현재의 나는 행복을 매 순간 관통해나가고 있으므로 이를 계속 체험하고 있다. 체험으로서의 행복이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려고 별다르게 노력하고싶진 않다. 



p.038

눈을 마주보며 얘기하기

언젠가부터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거나 어색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내가 자신의 두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라지만 나는 1초 이상 또렷이 쳐다보며 이야기할 수 없다.


p.072

(술 처먹고 술기운에 연락하는 짓은 어린애나 할 짓이다.)


p.091

세대 규정

19살이었을 때 신문이나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우리 세대를 통틀어 '엑스(X)세대'라고 자기들 좋을대로 명명했다.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소비하게끔 부추겼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했다. 그러다가 빌어먹을 아이엠에프(IMF)가 닥쳤다. 우롱한 것이다.


p.093

나는 왜, 서울로, 내 작품들을, 선보이러, 올라갔던가? 서울 사람들에게 나의 작업물을 보여주고 나의 재능을 어떤 식으로든지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어린마음에는 25살이 되면 걸작을 만들것이라고 (혹은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물을 그렇지 못했고 나는 현실에 절망했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때 남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 사람들이 도대체 뭔가. 잡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천재의 신화를 부추겼고 나는 거기에 휘둘린 소심한 청년이었다. 지금도 주변에 그러한 친구 혹은 후배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분들에게는 꾸준히 작업해 나갈 것을 권한다. 누구의 평가에도 휘둘리지 말지어다. 


p.113

어머니는 늘 내게 이렇게 다정하고 좋은 분이었다. 아버지가 무뚝뚝함과 기술이라는 두 선함의 함장이었다면, 어머니께서는 다정함과 온화함과 감정의 풍성함이라는 세 선함을 호령하던 함장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반된 두 성격의 혼합체일지도 모른다.


p.141

어떤 단체를 이끌어 나가려면 개인사정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p.150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 '대충 만드는 제작방식'이 문제였다. 나는 항상 영화를 제대로 만들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고집이기도 했는데, 즉흥적으로 만들 때 뭔가 그 순간의 진실이 담기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연출도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걸까?


p.193

너무 아팠던 나머지 어머니보다 더 강력하게 날 도와줄 거 같은 할매를 찾았던 것이다. 정작 내게 할머니란 존재는 희미하다. 그런데도 그날만은 고통을 참기위해 할매를 끊없이 불렀다. 할매 때문인지 수술하는 동안 끝까지 잘 참을 수 있었다. 내 기억속에서 희미한 할매지만 그날만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p.194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을 계속 미루고 있다. 결혼식에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p.212

배민호 

한받 님의 글은 보통 자서전과는 형식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굳이 '사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받

늘 어떤 내용을 표현함에 있어서 어떤 형식이 괜찮을까에 대하여 생각을 해봅니다. 좀 더 재밌는 형식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요즘 출판업게에 사전류의 간행이 유행하고 있는 듯하여 사전의 형식을 취해보았습니다. 이러한 현식으로 함에 있어서 장점이라면 스토리텔링이 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의 형식이 아니라 단자회된 목록으로 구성함으로써 감정이입이 차단되는 상태에서 마치 퍼즐처럼 사전을 다 보았을 때 한 사람의 이미지가 어렴풋하게 독자들의 마음속에 생성되었으면 하고 바랐거든요.


p224

예전에는 욕망이 앞섰다면 이제는 의지가 앞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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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 쌈싸페에서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공연을 처음 보고 뭐에 홀린듯 팬이 되었다.

그 이후로 얼마 없는 youtube의 영상들을 보며 한 받이라는 사람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가던 찰나에 이 책을 보고 냉큼 읽었다. 자신을 키워드로 정리하고 그것을 사전의 형식으로 나열해서 일반적인 자서전들의 '예측가능한 스토리' 또는 '자연스러운 스토리텔링'을 해체하고 단어들의 조합과 그 내용들이 책을 덮는 순간 샥샥 정리가 되면서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되었다. 나도 이런 작업을 나중에 꼭 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