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너

그 이유는 니가 우리 아빠한테 선물했던 런닝때문이야

우리 아빠 생신일 때 속옷 전문점에서 꽤 비싸게 주고 샀다던 런닝과 속옷 세트를 우리 아빠한테 직접 선물하러 여기까지 왔었잖아

근데 그게 너~무 좋았던 거야. 매년 여름 우리 아빠는 셔츠 안에 그 런닝을 꼭 입고 다니시더라?

갑갑한 거 싫어하고 무거운 거 싫어하는 우리 아빠는 이 런닝을 몇 장 더 사고 싶다고 나에게 물어보셨는데

그때는 이미 우리가 헤어진 사이였고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매장에 전화도 해봤지만 2011년 이후론 이 브랜드에 대한 기사조차 검색되지 않았어

니가 살던 동네 천안 어느 BYC 상설매장에서 샀다는 것만 알고, 나도 그곳이 어딘지 어렴풋이 기억만 날 뿐이고


이제는 한 4년 됐나?

그 런닝이 닳아져서 등 부분이 다 구멍이 나고 런닝 마감 부분은 실밥이 다 빠져서 너덜너덜해졌어

우리 아빠는 아직도 퇴근하시면 그 런닝을 손빨래해서 방에다가 잘 널어놓고 다음날 또 입고 나가셔

진짜 거적데기 입고 다니는거랑 똑같다


어제도 그 런닝 찾아보려고 이곳저곳 알아보곤 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제는 벗어나야겠다고, 이 브랜드도 잊고싶고 구멍 난 그 런닝도 보기 싫고, 제일 싫은건 

네가 여름마다 떠오를 수 밖에 없는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오늘 쇼핑하러 갔다가 필사적으로 아빠의 런닝을 샀어

물론 다른 브랜드의 런닝이고 아빠가 좋아하실만한 재질일것같아서 기대반 걱정반으로 사서 드렸는데

마음에 드신다고 몇 장 더 사오라고 하시더라


그래도 네가 사준 런닝은 버리지 않고 가끔 입으시겠지

하지만 더이상 이 런닝이 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거 참 다 지운다고 지웠는데 아빠의 런닝에서 니가 생각날줄은 꿈에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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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 페이스북 댓글에서 널 봤어

작은 프로필 사진엔 여자친구랑 찍은듯한 스티커사진이 잔뜩 있었고


내가 널 만날 때마다 카메라에 담는 내 모습을 보고

'내 평생 찍을 사진 니가 다 찍어주는것같다' 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어 

쨌든 잘 지내는구나~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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