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람

임슬기


p. 27 특히 여행 에세이의 경우, 사진에 찍힌 사람에게 그 사진이 책에 실리는 것에 대한 동의를 받았는지 또는 실릴지도 모른다는 걸 미리 말했는지 궁금했는데, 피사체에 대한 예의가 담긴 페이지가 반가웠다. 

p. 32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봤던 책 가운데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국립민속박물관 발행 '도시민속조사보고서'시리즈였다. - 이 책을 너무너무 보고싶은데 대여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더라. 책 이름을 검색 후, 몇개 안 되는 뉴스 기사를 클릭했다. 기사 맨 마지막 줄엔 '보고서는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발간자료 원문검색 서비스에서 볼 수 있다.' 라고 써 있었다. PDF 파일로 받아 볼 수 있었다. 

p. 121 우리는 약하거나 엄살을 떨기 때문이 아니라 용기있기 때문에 이런 모임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약할 때는 자신의 취약한 치부를 드러내는 게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나 이렇게 아파" 혹은 "나는 감당이 안 돼",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분들이 용기를 내주신 덕분에 가능한 자리이겠지요. 고혜경 <꿈에서 길을 묻다 : 트라우마를 넘어선 인간 내면의 가능성을 찾아서>

p.144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이 소리를 얻고, 시간이 갈수록 그 소리가 커지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쓰고 싶다고 말하는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결국 뭘 쓰고 싶었는지도 잊었다.

p.145 글 쓰는 사람이 글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 들어서 아무것도 안 써놓고 백만 저서를 이룬 대작가처럼 굴고 있더라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글을 쓸 때 어떠했다, 하는 글을 읽은 것만으로 내가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람은 글을 쓰고 직접 느낀 감정을, 나는 아무것도 안 써놓고 맞아. 그 기분 내가 알지. 이러고 있었다. 그렇게 형체도 없는 가짜 감정들이 내 영혼에 허세를 불어넣어 한동안 작가뽕에 취해있었다. 작가뽕이란 술과 같아서 취했을 땐 헤롱헤롱하니 좋지만 깨고 나면 그토록 자괴감이 들고 괴로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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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이 있는 페이지를 한 손가락으로 걸치고 다른 손으론 책장을 넘기며 봤다. 가끔 나오는 수원의 향기, 그리고 나와 동갑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던. 그녀가 추천한, 혹은 짧은 문장이 내 구미를 당긴다 싶으면 바로 검색하여 관심도서로 넣어두었다. 도서관에서 확인해보니 몇 권은 마음에 들었고, 몇 권은 별로였다. (본문에 나온 도서 중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대여했다.) 도서관을 선정한 이유와 문장의 끝에 달린 별의 개수가 재미있었다. 특히 도서관의 내부를 묘사하는 부분은 내가 다녔던 도서관의 느낌과 비교해보며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기록'은 좋았지만, 중간에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조금 거슬렸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책인 <대형무덤>도 읽으려다 같은 시리즈인 것 같아 내려놓았다. <서울, 9개의 선>은 읽기 전에 표지와 소개글만 보고 구입을 망설였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는 책이어서! 집 앞 도서관에 2주 간격으로 가봤지만, 대출가능 상태인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읽고 있거나, 분실한 것 같다. 다음에도 없다면 도서관 사서에게 물어봐야겠다.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p.7 몇 살이 되었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수 있었으면 한다. 노력이라는 행위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 고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간단히 결론 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서둘러 결론을 내려는 대신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볼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또한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잃는 것이 반드시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는 태도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나 자신과 기쁘게 맺은 약속들이다.

p.18 생각하는 것에만 너무 중점을 두다 보면 자칫 행동하지 않을, 움직이지 않을 부정적인 이유를 만드는 데 생각이 더 쓰인다. 나한테는 무리니까, 난 이것밖에 못하니까, 라며 스스로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 (중략)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나한테는 이것이 최선이야, 라고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큰 용기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행동을 일으킨 다음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머릿속에서 선만 긋는 것과는 다르다. 확고한 생각이나 단단한 가치관이 되어주는 것들은 내가 자발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서 체득된다. - 이 글을 읽고 바로 스쿼시를 등록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p. 31 제일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서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p. 84 어떤 이들은 남자에게 일을 다 하면 칭찬을 꼭 해줘서 기분 좋게 해 다음에 또 하게 하라는 '칭찬 요법'을 권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아니 하기 싫다! 가사일이 끝났을 때 아무도 그에 대한 고마움이나 고됨을 평가해주지 않는 그 적적함과 허탈함을 그도 느껴봐야만 한다. - 우리 남편도 내가 어느 가사일을 시키면 마치고 나서 '나 다 했어'라고 나에게 와서 말을 한다. 그럼 나는 '응 고생했어' 라고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도 서로 피곤하게 싸우지 않고, 가사일을 마칠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아니 내가 설거지 끝날땐 고생한 거 아닌가? '고마움이나 고됨을 평해주지 않는 그 적적함과 허탈함'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였다. 그랬네. 허허.

p.95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다 좋아한다고 하면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모두를 기쁘게 할 수는 없다.'-파울로 코엘료. 제한된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데에 시간과 마음을 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p.155 변화 이전의 모습이 '악'이고 변화 이후의 모습이 반드시 '선'은 아니다.

p.166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노력했거나 몰두한 경험 없이 성장해버리면 '헐렁한 ' 어른이 되고, 만약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이건 나의 최선이 아니었으니까'라며 마치 어딘가에 자신의 최선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스스로에게 도망갈 여지를 준다. 

p. 178 대체 타협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비겁함과 기회주의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을까.

p.196 인간관계가 기쁘기 위한 기본은 '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내가 좋아하는'가 이며, 연기는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p. 210 내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는 상대보다 '나'에 대한 일말의 진실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니 초점을 상대에게 두기보다 자신의 마음에 먼저 두어야 할 것이다. 타인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내가 어느 순간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열을 올린다면 나는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p. 225 부탁이라는 것은, 그 사람 아니면 도저히 해결 방법이 없을 떄, 아무런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부탁한 데에 대한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를 각오와 부담감을 가질 때 하는 것이다.

p.253 현철 : 남들은 연봉이 얼마냐, 일주일에 며칠 쉬냐, 라며 상한선을 보잖아요? 전 늘 하한선을 정하라고 하거든요. 어떤 부분은 양보할 수 있되 어떤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 그게 하한선인데 전 그게 침해당하면 그만두라고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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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가 설명한 태도들에 몰입하며 내 30년 인생 속 모든 추억을 다 끄집어냈더랬다. 이십 대 초반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을 이력서 맨 마지막 줄에 적었던 시절도 떠올리고,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나를 힘들게 만든 적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에게서 나보다 부족한 면을 찾으려 애썼던 세상 찌질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작가는 마지막에 말한다. 자신의 이러한 생각이 독자에게 '강요'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그래서 그런 건가? 작가는 마지막에 정신과 의사와 나눈 대화를 기록했는데, 그건 안 하는 게 좋지 않았나 싶다.





최숙정 할머니의 살림살이

국립민속박물관


p.20 예를 들어 살림살이의 구입 경로를 통해 생활 반경을 유추하거나, 증여 관계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가늠하는 것, 특정 살림살이의 종류에 따라 구성원의 생업 혹은 사회적 신분 등을 알 수 있거나, 보존 정리 상태로 사용자의 성격을 가늠하는 것에 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수많은 정보들을 읽어낼 수 있다. (중략) 모든 물건은 인간의 문화적 행위와 관련하여 생산되고 소비 혹은 보존된다. 따라서 모든 물건에는 그것을 만들고, 구입하고 사용한 사람들의 의도와 의미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 이 문장을 읽고 내가 그동안 버려온 물건(별로 없지만)들을 잠깐 떠올리며 아깝다 생각했고 이내 아차 싶었다. 

p. 71 영수증 : 최숙정은 시에서 발송한 우편물이나 영수증은 잘 버리지 않는다. 시에서 나온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김광용이 속초시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고, 김일용과 김세용 모두 시 소속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p.99 영정사진 : 속초 갈릴리교회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찍어준 영정사진이다. 한복이 없던 이웃들에게 최석중이 차례로 자신의 옷을 벗어 빌려주며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당시 함께 촬영했던 사람들의 영정사진은 모두 다 같은 옷을 입은 채 찍혀있다.

p.114 최숙정에게 가장 많은 살림살이를 사다주는 사람은 바로 경아엄마다. 경아엄마는 좁은 골 목을 사이에 두고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이웃이다. 최숙정 집의 바로 맞은편에 경아엄마의 집이 있다. 강릉이 고향인 경아엄마는 70대로, 최숙정보다 10살이나 어리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 20여 년 전 경아엄마가 청호동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최숙정이었다. 최숙정은 남편을 따라 아무런 연고가 없는 청호동으로 옮겨온 경아엄마를 배려하고 챙겨주었다. 이후 경아엄마와 최숙정은 서로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고민을 상담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조건 없이 돈을 빌려줄 정도로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경아엄마는 현재 최숙정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구입해주고 있다. 경아엄마는 다리 운동 삼아 시장을 자주 왕래하는데, 그 때마다 최숙정의 집에 들러 살 물건이 없느냐고 묻는다. 물건 구입을 부탁할 때는 최숙정이 경아엄마에게 먼저 돈을 지불하고, 경아엄마는 물건 구입 이후 잔돈을 최숙정에게 돌려준다. 시장에 갈 때 경아엄마는 본인의 집을 잘 봐달라고 최숙정에게 부탁한다. 경아엄마가 사온 물건을 받은 최숙정은 살림살이를 사다줘서 고맙다며 인사를 나눈다. 최숙정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집안사정이나 최숙정의 입맛, 취향, 성격 등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건 구입을 부탁할 때도 편하다. 

p.122 립스틱 : 오징어 작업장에서 일하며 친해진 이웃이 최숙정에게 증여한 립스틱이다. 대포할머니라 불리는 이웃은 딸이 많아 각종 의류와 액세서리, 화장품 등이 많았다. 대포할머니는 딸이 없는 최숙정을 위해 본인이 받은 물건들을 종종 나누어주곤 했다.

p.125 최숙정의 집 바로 앞에서 커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은혜엄마는 최숙정을 친정엄마처럼 생각하며 잘 따른다. 새로 나온 음료가 있으면 최숙정에게 먼저 만들어 갖다 준다. 계절에 따라 팥빙수나 따뜻한 라떼음료를 갖다 주거나 배앓이를 많이 하는 최숙정을 위해 직접 만든 매실엑기스를 증여한다. 은혜엄마가 먹을거리나 가게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갖다주었다면, 은혜아빠는 설치가 필요하거나 최숙정이 직접 구입할 수 없는 물건들을 증여했다. 은혜아빠는 최숙정이 다리를 다친 이후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디에선가 중고 유모차를 얻어왔다. 겨울철 수도의 동파방지를 위한 덮개나 시멘트 남은 것, 전기난로 등의 물건도 함께 증여했다. 비싼 물건들은 아니지만 최숙정을 생각 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깃들어있는 살림살이들이다. 가까이에서 지내며 살뜰히 챙겨주기 때 문에 최숙정은 본인의 아들들보다 은혜아빠를 더욱 든든하게 생각한다. 최숙정은 커피가게로 배달된 택배물건을 대신 맡아두곤 하는 일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한다.

p.132 살림살이를 증여한 이북출신의 이웃들은 물건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청호동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호화스럽게 살지도 못했지만, 그들은 집을 좋게 짓거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땅을 사는 일에 돈을 쓰지 않았다. 속초에 있는 집문서, 땅문서가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건에 대해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귀향길에 오르면 모두 가져갈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작은 것이라도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며 살았다. 살림살이를 주고받는 최숙정과 이웃들 인식의 밑바탕에는 실향민으로서의 동질감과 동향 출신에 대한 깊은 신뢰관계가 있었다. 최숙정에게 살림살이를 증여한 이북출신의 이웃들도 그러한 정서를 바탕으로 최숙정과의 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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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기록하고 매주 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그리고 존경스러움을 담아 읽어내려갔던 보고서(!)이다. 한때 아주 잠깐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있어 매일 카메라를 가지며 '기록'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최숙정 할머님의 탄생부터 현재까지를 기록한 보고서는 방탄소년단 직캠 영상을 보는 것보다 더 짜릿했다. 보고서라 그런지 주관적인, 특히 감정적인 구절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유리 민속연구과 연구원의 조사후기를 읽고 눈물을 찔끔 흘렸더랬다. 6개월간 진행된 조사 속에서 할머님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라던가 함께 먹은 과일이라던가 조사 대상자와 조사자로 만났지만 손녀와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챙김을 받았다던 후기에 마음이 뭉클했다. 조사 대상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살림살이를 (냉동실에 얼려둔 고깃덩어리 하나까지 모두 촬영한다.) 꺼내어 사진을 촬영하고, 목록화하며, 각각의 살림살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 보고서의 마지막 파트, 모든 살림살이의 사진을 찍고 번호를 붙이고 이름을 붙여 정리해놓은 페이지는 연구원들 진짜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시각화한 디자이너들도 존경. 국립민속박물관의 도시민속조사는 2007년 김정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자료를 받아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