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널뛰기

저자
황승미 지음
출판사
텍스트 | 2009-11-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달팽이 널뛰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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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44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모리 선생님이 정말 이런 말을 했을지 궁ㄱ므하다. 그렇다면 죽는 방법과 사는 방법이 결국 같은 것 아닌가.


p.057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혹은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어 마주한다는 것은 별로 추천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늘 마음속 한곳에 묻어 두었다가 죽기 전에 꺼내 봐야지 하면서 용기를 내어 꺼내지만 역시 덮어 두는게 낫다. 기억은 '현재'라는 공기에 닿자마자 변해버리는 성질이라도 가지고 있는건가. 틀린 기억이라도 틀린 채로 있는 게 나은 셈이다. 익숙했다고 생각하는 장소에 다시 가지 않고 확인하지도 않음으로써,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을 보호하는 거다. 사람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p.060

요즘엔 각 나라별로 문화를 가볍게 소개하는 책을 빌려다 보고 있는데, 지리부도를 같이 놓고 보니 여행의 꿈이 부푼다.


p.067

벼랑으로 몰고가기 2007년 5월 23일. 수요일. 밤 10시 반.

(중략)

자신을 벼랑으로 밀어 붙여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건 내 특기다. 내가 만든 벼랑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기 때문이다. 나같이 게으르고 용기 없는 인간에게는 특효약이다.


p.081

얼마 전부터 농반진반으로 "뭐하는 사람이냐?" 하는 질문에 화가 지망생이라고 답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가지는 힘이라도 얻으려고. 그림을 시작하면 재밌고 좋을까. 난 도대체 뭔가. 머리가 텅 비었다.


p.094

어영부영 오늘 하루도 다 갔다. 일기를 쓸 때면 항상 시간을 먼저 챙기게 된다.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이고 몇 시인지. 그다음 무슨 보람 있는 일을 했는지를 생각해본다. 그런 일이 없으면 자멸하고, 있으면 안도하고.


p.127

일기장이라고 2008년 3월 17일. 월요일. 맑은 봄날.

오늘은 논문작업을 나름대로 좀 했다. 일단 분석 틀거지와 소주제는 잡아 놓은 상태이다. 내일은 이론을 좀 더 쓰고, 소주제에 대한 나의 분석을 달아 놔야지. 논문 수첩이 아니라 일기장인데, 자꾸만 논문 얘기를 쓴다.


p.137

힘내라 황! 2008년 6월 12일 목요일. 저녁. 강하고 갑작스런 소나기와 천둥 번개.

10일엔 결국 광화문에 나갔다가 밤 1시였나, 시청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나선 역시 뻗었고. 자꾸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연구원을 그만둔 지가 벌써 2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많이 했지. 배포 언니한테 그림 배우고, 어시라는 것도 해보고, 녹색아카데미 사람들을 부추겨 놀러도 다니고, 이것저것 많이 배우고 듣고, 섬에도 다녀왔고, 지금은 논문을 쓰잖아. 느리지만 조금씩 하고 있는거다.

  왜 연구원을 다녔던 기간과 비교하는 거지? 왜 항상 뭘 해야 한다고, 지금 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거기서 얻은 게 돈 말고도 많겠지만, 그 재미없고 지겨웠던 시간들은 아까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지금 아주 잘살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가끔은 5시에 일어나잖아. 힘내라, 황!


p.155

낮 12시.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방울이 지상의 것들에 부딪히는 소리는 신선하다고 해야 하나, 일깨운다고 해야 하나.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이 '나 여기 있다'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 같다. 


p.165

('~한 것 같다' 라는 표현은 이제 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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