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정도

내 계획은 땅끝전망대 - 땅끝탑 - 송호리 해수욕장 이 코스를 도보로 걷는것이었다. 검색하다가 이 코스가 한국의 걷기좋은길에 뽑혔다는걸 알게 된 후로 더더욱 제대로 걷고싶다! 했는데 왕복 2시간이라고 했고, 난 7시 반까지 다시 땅끝탑으로 돌아와서 일몰을 볼 계획이었고, 아이폰 배터리가 다됬고, 최악으로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았다. 송호리 해수욕장엔 바닷가 안에 놀이터가 있다고 해서 정말 기대했는데 결국 그건 포기하고 전망대와 탑에 가기로 하고 먼저 짐을 좀 덜기 위해서 게스트하우스부터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면 가장 높은 건물인 '하얀집'이라는 모텔 바로 뒤쪽에 위치해있는 케이프 게스트하우스 (바로가기)

해남에서 딱 1개밖에 없는 게스트하우스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지만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라는 기대감도 있고 해서 냉큼 예약했다. 체크인 하러 들어갔는데 단박에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내가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손님이라고, 벌써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크인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떨결에 바베큐파티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6인실 도미토리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해도 이 방에 나 밖에 없었다.


간단히 씻고 짐을 좀 덜고 아이폰, 카메라 충전 뒤 5시 반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서 땅끝전망대쪽으로 걸어갔다.








일출/일몰이 저 바위들 가운데 틈 사이로 뜨면 그렇게 멋있다고 하는데, 날씨가 구려서 제대로 볼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걱정되었다. 이 뒤쪽으로 나와있는 '삼남길' 계단으로 쭉 올라가면 바로 땅끝전망대로 갈 수 있는 모노레일이 나온다. 땅끝전망대는 도보로 가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갈 수 있는데 올라가는건 30분정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한다. 시간이 많다면, 체력이 좋다면 추천. 


나는 모노레일을 선택했다. 왕복 말고 편도로 올라가는것만 구입했고(3000원) 내려올땐 도보로 내려오면서 땅끝탑에 들릴 예정이었다.

모노레일은 꽤 자주 그리고 생각보다 늦게 (여름이라 그런듯)까지 운영한다. 바람이 심해서 혹시 '지금 운영하나요?' 하고 물어봤는데 당연히 운영한다면서 표를 건내주셨다. 모노레일은 사진과같이 두대가 대기하고 있는데 나는 안쪽에 있는 모노레일을 탔다. 나와 어느 4인 가족이 타서 정말 어색하게 있었는데 저기 언덕에서 아줌마들 한 20명이 모노레일을 타러 올라왔다. 덕분에 내가 탄 모노레일 뿐만 아니라 우리 뒤에 있는 모노레일도 꽉 차버린 상태에서 출발했다.













안쪽에 있는 모노레일을 타면 제대로 된 풍경을 볼 수 없으니 절대적으로 뒤에있는 모노레일을 타세요오. 

아줌마들 수다소리와 아주 뭐 들썩거리는거랑 해서 날씨도 안좋고 최악의 모노레일이었다. 











사실 땅끝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으려고 했다. 대부분의 여행 다녀온 사람들이 1,000원씩이나 내고 전망대 올라가봤자 볼것 없다고 하길래 에라이, 나도 뭐 천원 아끼지 뭐! 하면서 안가려고 했는데 출발하기 바로 직전에 어느 블로거가 쓴 글을 보았는데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온 상태에서 본 풍경사진과 땅끝전망대에 올라가서 본 풍경사진을 비교해놓은거였다. 그거 보고 120% 땅끝전망대에는 꼭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뷰 자체가 달랐음! 절대 꼭 올라가야한다. 

윗 사진이 안올라간 상태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땅끝전망대는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듯 했다. 여행패키지로 온듯한 아줌마들을 모두들 올라갔고, 나 혼자 매표소 앞에서 표를 사려는데 아저씨께서 운영 시간이 끝났지만 아줌마들 들어가셨으니 빨리 따라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입장료를 받지 않으셨다. 아싸 천원 벌었구나! 뭐, 천원 그 이상이었어도 꼭 올라갔겠지만 말이다.


















위에 보이는 사진들이 바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땅끝의 모습이다.

날씨가 정말 좋지 않았다. 일기예보에서 분명히 화창할거라고 했는데 흑흑 이곳에서 일몰을 보면 끝내줄것같았다. 아줌마들 무리중에 마지막 무리가 내려갈때까지 꽤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 그래서 겨우겨우 일몰이 진행될것같은 그런 풍경까지 보고 내려와야 했다. 빛내림이 끝내줬다. 아 해남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일출/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곳이라고 한다. 바람도 엄청났고 창문을 열면 미친듯한 바람때문에 뒤로 날아갈것같았다. 전망대를 내려오니 날씨는 더 안좋아졌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아줌마들 단체사진찍는걸 뒤로하고 (찍어달라고 할것같아서) 빨리 땅끝탑으로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땅끝탑에 금방 도착할줄 알았는데 거의 20분동안 계단을 내려갔다가 올라갔다 했다.

날씨도 안좋고, 이슬비도 떨어지고, 사람이라곤 어떤 커플, 또 다른 커플, 그리고 엄마와 아들 이렇게 세팀 봤다. 세팀 모두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진짜 한마디도 없이 올라가기만 하더라. 내려가는것도 다리 후들거릴정도로 많이 내려갔는데 올라가실분들은 작정하고 올라가셔야합니다아. 내려가는길에 사람도 무지 없고 게다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는 엄청 많았다. 그래서 중간중간 쉬면서 찍은 셀..카


아래 사진처럼 긴 원피스를 입고 백팩을 메고 목걸이 주머니(?)를 메고 돌아다녔다. 전투적으로 걷기 위함이니라. 근데 어느 누가봐도 '아 쟤는 여행왔네' 싶었을듯

뉴발 신발에 구멍남. 내리막길을 너무 열정적으로 내려간듯했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게 맞는건가? 싶을때쯤 '땅끝탑' 이라는 표지판이 보였고 조금 내려가니 드디어 땅끝탑!








날씨가 안좋았던건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느낌이 묘했다. 땅끝이라는 점에 많은 의미를 둔건 아니지만 그냥 한반도 최남단 땅끝이라는 점이 참 묘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인데 이번 여행의 목적에 조-금은 들어맞지 않았나 싶다. 또 다른 시작은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하나의 과정을 두고 있는 모든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땅끝에 찾아왔으니 말이다. 

땅끝에 서서 사진도 찍고 땅끝탑을 배경으로 해서 셀카도 찍고 스믈스믈 올라오는 일몰들도 몇장 담아보았다. 주변은 정말 조용했고 바닷물이 철썩하는 소리만 가득했다. 


이번 여행에서 무언가 얻어가야지! 얻어가야해! 라고 부담을 가졌었다. 아마 카메라를 가지고 가야하나 고민했던것도 그것과 비슷했던것같다.

어떠한 '행동'을 하던 나에게 득이 되는걸 찾기 시작했는데 예전엔 '단지 좋아서' 시작했던 일들이 더 많았다. 아무것도 재보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단지 내가 좋아서 내가 끌려서 시작했던 일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걸 하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지? 내가 지금 이것을 하면 다른 기회들을 어떻게 하지? 이걸 할때가 아닌데, 내 주변엔 이러이러한것들을 하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왔지? 싶었다. 


여행을 할때보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을때에 깨닫는것들이 많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그러하다.

여행 도중에는 내가 무슨 대단한 인간도 아니고 한번의 여행에 어떤 많은걸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는건지, 한심하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의 작은 목적, 목표, 그리고 그것의 달성은 더 큰 성공을 가지고 온다는걸 배우고 있었고 

당장 그 성공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야 진정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기다림을 얻기 위한 여행이었다.















위 사진은 땅끝탑 파노라마 사진! 클릭해서 보면 더 크게 볼 수 있다.


땅끝탑에서 좀 앉아서 쉬다가 왔던길을 조금 되돌아가서 표지판을 따라 땅끝마을로 내려왔다. 한 20분정도 걸어 내려오니 모노레일 탔던곳에 도착했고, 날씨가 좀 선선하길래 바로 앞 바다에서 사진 찍고 바람 쐬다가 7시 맞춰 케이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7시부터 바베큐파티였다. 주인아저씨께서 저녁 먹으러 내려오라고 하셔서 또 금방 씻고 나갔다. 


















요 근래 먹었던 고기들중에 단연 최고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구워주시고 맛있는 밥과 신선한 야채와 완전 칼칼한 마늘과 고추, 그리고 깔끔한 밑반찬과 구수하던 된장국까지! 아 이날 총 11명의 손님들이 묵었는데 모-두 여자였다. 그중에 바베큐파티는 나 포함 6명이서 함께 했다. 어색한 인사를 하고 조용히 밥을 먹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밥을 먹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와서 맥주를 마시고 그렇게 저녁식사를 마무리 했다. 간호사 언니 두명, 학원 수학선생님 두명, 직장 그만두고 4일째 여행중인 언니, 그리고 나. 각각의 사연들을 깊게 말하진 않았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건 굉장히 설레는 감정이다.









맥주 한캔과 밥을 배부르게 먹고 게스트하우스 1층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묵는 도미토리에 들어갔더니 6인실이 꽉 차있다. 그중 나처럼 혼자 여행 온 어떤 언니까지 합세해서 총 7명이서 밤산책을 하기로 했다. 무슨일 하냐고 물었더니 군인이라고 하셨다. 캬 멋진 직업군인여성! 땅끝탑은 밤에가기엔 너무 어둡고 무서울것같아서 바닷가 등대쪽까지 걸어갔다. 등대 불빛 하나밖에 없어서 도대체 길이 있는걸까 징검다리 걷듯 하나한 확인하고 걸어갔다. 등대 사진 찍고 뒤돌아보니 전망대 불빛과 모노레일 불빛이 참 예쁘다. 













게스트하우스 들어가서 맥주 한잔 더 하자고 해서 패밀리마트에 들어간 언니들

나는 밖에 서있었는데 고양이 두마리가 내쪽으로 왔다. 바닷가고 여행객들이 많아 먹이를 잘 얻어먹는듯했다. 통통한 두녀석이 내 눈치를 계속 보면서 다가왔다. 먹을것을 주는 시늉을 하니 좀 더 가까이 왔는데 거기까지였다. 내가 먹이가 없는것을 알고 외면하기 시작했다. 한 20-30분 얘네랑 놀다가 뒤늦게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서 맥주를 이어 마셨다. 

















밤의 케이프 게스트 하우스는 너무 예뻤다. 

책도 많았고, 특히 사진관련된 책이 많아서 한참 훑어봤다. 사장님이 사진을 좋아하시는듯! 라이카 카메라도 가지고 계셨다. 어두워서 잘 못봤는데 분명 라이카같았다. D시리즈인가! 여튼 으 부러운 카메라 흐흐 음악도 너무 좋았다. 포크음악이 대부분이었다. 통기타가 있는게 이상하지 않았다. 기타가 너무 반가워서 조금 연주해봤는데 넥이 휜건지 (확인 안해봄) 넥과 줄 사이가 심하게 떠있었다. 엄청난 버징과 함께 나의 작은 여자손(..)으로 바렛코드는 잡을수가 없었다.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과 사진들, 천장에 좌르륵 이어져있는 다녀간 사람들의 폴라로이드 사진들, 탁자와 유리 사이에 끼워져있는 사진들과 분위기 좋은 조명과 잔잔한 음악과 좋은 언니들과 함께 한 해남 땅끝에서의 하룻밤. 케이프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추천! 겨울에, 정말 엄청 추운 겨울에 다시 올거라 다짐했다. 

11시 좀 넘어 술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와 군인언니 (이름도 모른다)가 들어갔을 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잠들어있어서 정말 조용히,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엄마와 연락을 조금 주고받고 바로 잠들었다. 


모든 사진은 Canon Powershot S95과 iphone4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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